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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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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아버님 여행 떠나신 날.. ^^


BY 초록정원 2003-12-15

 

안방 창문을 열어놓고 청소를 했습니다..
아버님은 겨우 오늘 새벽에 여행을 떠나셨는데..
이제서야 비행기 트랙을 밟으실 시간인데..
문갑 위를 닦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어찌 이리 마음이 허전한지..

일주일이나 되는 긴 여정동안 잘 다녀오실지..
여름 옷가지들과 자잘한 세면용품들을 챙겨드리며
가장 중요한 여행 준비물이 약봉다리인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당뇨약과 혈압약과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협심증 상비약.. 그리고 우황청심환..
이젠 어딜 가셔도 뗄레야 뗄 수 없는 아버님의 동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전 아직 운전면허증이 없습니다.
며느리 외출준비하고 나서면 어디까지 태워다 주랴.. 미리 나서시는
멋쟁이 시아버님 덕분이지요..
가끔 친구들이 놀립니다..
너 어제도 시아버지차타고 어디 갔었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꼭 나이많은 애인하고 다닌다고 하겠더라.. 쿠쿠..

76살 연세에도 바바리코트가 아주 잘 어울리는 우리 아버님..
지금도 소년같은 감수성으로 일상의 느낌들을 자주 기록하시는 우리 아버님..
무엇보다 이 덜랭이 메느리를 끔찍하게 사랑해 주시는..
외출복 허술하게 입고 나서면 옷이 그거밖에 없냐고 물어봐 주시는..
첫선보는 자리에서 남편감보다도 훨씬 반하게 만들어서 시집오게 만든 장본인이십니다.. ^^*

새벽 4시반에 남편이 아버님을 태워다드리고 왔습니다.
떠나실 때 차안에서 눈을 두리번거리시길래 왜 그러시나했더니
이 덜랭이 메느리 찾으신 거였습니다.
눈 맞춰주시구 가실랴구 말이예요.. ^^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길 기원합니다.

원체 미남이시라 어여쁜 여성들의 유혹도 많았다는데 평생을 모범가정 잘 지키고 사신 우리 아버님..
그래도 남모르게 마음 속에라도 꼭꼭 숨겨두고픈 연인 계셨거든
화양연화 남자 주인공처럼 앙코르와트에 가서 꼭꼭 묻어두고 오시라고
어제저녁 농담처럼 말씀 드릴까 말까 하다가 그만 두었답니다..
저 참 짖궂은 메느리지요?? ㅎㅎ..


炅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