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때는 늘 편두통이 따라온다. 시작하는 날 하루 왠종일...
언제부터인지 이런 증상이 생겼다. 내가 예민해서 그럴 것이다.
거기다 이번엔 저녁 먹은 걸 체하기까지 했다.
마파두부소스를 사서 두부를 넣고 볶아서 막 먹으려는데 갑자기 그 향이 싫다는 생각이 들
었다. 하지만 배가 고팠었고 또 버리자니 아까와서 그냥 먹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안 좋았던
모양이다.
식사를 마친 조금 후부터 편두통이 머리 전체로 번지더니 골 전체가 지끈지끈 아프고 계속
트림이 나오고 속이 거북했다. 설사도 한 번 했다.
자리에 누워 한 시간여를 자고 일어났는데도 증상은 여전했다. 타이레놀을 하나 꺼내 먹었
다. 그런데도 효과가 없었다.
내가 자꾸 끙끙 앓으니까 책을 읽던 아이가 "엄마, 많이 아파?"
하더니 내 곁으로 와 머리를 안마해 주었다. 머리가 꽝꽝 울린다. 누가 머리 속에서 공을 튕
기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좀 시원한 맛은 있었다. 어깨와 등도 두드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 뿐, 또 다시 참을수 없는 두통이 밀려왔다.
체한 것 때문에 더 이런다싶어 화장실에 들어가 목구멍에 손을 넣고 기어이 먹은 것을 다 토
해 냈다. 마파두부며, 밥이며, 점심때 먹은 국수까지 나온다. 소화가 제대로 안 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민우생각이 났다.
대학 초년시절, 난 어지간히 술을 마시고 다녔었다.
그래도 토할 정도까지는 먹지 않았다. 워낙 주량이 쎈데다 그렇게까지 마시는건 스스로도 용
납할수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좀 과음을 했었나보다. 어느 날인지,어느 계절인지,누구랑 먹었는지도 기억
이 안 난다. 캠퍼스 뒤 가정집을 개조한 술집이었고 난 견디다 못해 그 집 마당 수돗가에 나
와 앉아 있었다.
그런데 따라나온건지 화장실을 가려고 한건지 민우가 내 옆에 있다.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왼손을 입에 대고 속이 안 좋은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긴 숨을 한 번
씩 몰아쉬고 있는 나에게 민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토하고 싶니? 내가 손가락 넣어서 눌러 줄테니 토할래?"
그 다음 장면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민우가 내 목구멍에 손을 넣진 않았다. 내 스스로도 그
렇게 하진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토를 했을 수도 있고 결국 좀더 앉아있다 그냥 다시
술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내게 묻던 민우의 그 말은 내 기억속에 생생이 남아있다. 토할 정도로 마셨으면 어지
간히 마시고 취한 것일텐데도 그 기억은 뚜렸하다. 그 말 속에 민우의 따듯한 마음이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민우가 날 너무나 신사답게 배려해주었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고맙기 때문이다.
손을 넣어 토를 하니 손가락과 손등에까지 오물이 다 묻는다. 내 것이지만 더럽고 역겹다.
신 냄새가 싫다. 그런데 민우는 이 일을 해 주려 했다. 내가 손가락을 넣어 토하는 걸 안 해
봐서 못 할줄 알았던 모양이다.
토하고 나니 속이 훨씬 편해진다. 또 다른 진통제를 먹고나니 머리도 개운해진다. 몸이 편하
니 마음도 차분하다.
그리고... 민우가 보고싶다.
그 애와 나는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본적 없지만, 그 애와 나와는 어쩌면 결혼했을지도 모를
사이다. 그만큼 서로의 마음이 잘 통했고 그만큼 서로의 고통을 잘 이해했다. 한 사람이 아프
면 말은 않지만 옆에서도 같이 아파했다.
그 애는 시를 쓰는 아이였다.
민우를 만나고 싶다.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
그 애를 만나면 바로 어제까지도 계속 만났던 사람처럼 그렇게 편안할거다.
내 남편이랑 그 애 아내랑 같이 만날 자신까지는 없지만 그 애를 만나면 난 내 남편과 내 자
식들 자랑를 실컷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애도 나에게 뒤질세라 그 애의 아내와 그 애의 아이
들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어 댈거다. 그런 그 애의 목소리와 그 표정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