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나는 늘 뱃속이 헛헛해서 뭐 먹을게 없나 온 집안을
뒤져 보기를 잘했다. 그러나 겨우 밥이나 굶지 않고 살던 형편이라
군것질 꺼리가 있을리 만무하였다.
사는게 그나마 우리집보다 나은 아이들은 강냉이를 손에 쥐고 나와 먹기도
하고 ,가을이면 주머니에 찐쌀을 몰래 넣어 와서는 마치 약 이라도 올리듯이
조금씩 야금 거리며 먹었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 사흘에 한번 꼴로 나타나는
엿장수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의 가위 소리는 참으로 요란 스러웠다. 텁수룩한 수염을 늘상 기르고
군인 잠바같은 옷을 항상 입고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자!! 또 왔어요 또 왔어!! 맛있는 엿이 또 왔어요!!" 철커덕 철커덕 가위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듯이 구성지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면 아이들이 먼저 우르르 엿판이 있는 리어커 주변에 모여든다.
아저씨는 마치 춤 을 추듯이 가위질을 해가며 엿을 잘라 수북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야들아 어서 집에 가서 엿 사달라고 땡깡 부려라"
그러면 우리들은 집집마다 뛰어가서 뭐 엿하고 바꿔 먹을게 없나 온 집안을
들쑤씨며 난리를 부렸다. 찌그러진 냄비나, 못쓰는 고철을 찾아 가지고 온 친구는
연신 싱글 벙글 이었다. 그때 내 소원이 그 아저씨가 잘라주는 두툼한 엿 을 실컷
먹어 보는거였다. 어쩌다 엿 을 조금 먹을수 있는 날 은 하루종일 입안에 단맛이
고여 있는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아저씨 리어커에는 온갖 고물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하루는 친구 순이가 엿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할머니 고무신을 몰래 들고 와서 엿하고 바꿔 먹었다.
그 다음에 아저씨가 왔을때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순이 할머니가 당장 고무신
내 놓으라며 야단을 치자, 아저씨는 시치미를 뚝 떼며 아이가 먹은 엿을 내어
놓으면 고무신도 준다고 해서 할머니한테 미움을 샀다.
그 다음부터 아저씨 가위 소리가 들리면 순이네 할머니가 먼저 달려나와서
종주먹을 해쥐고 아저씨한테 마구 욕 을 해대었다.
할머니의 고집이 대단해서 얼마후에 아저씨가 고무신을 하나 갖다 주고 나서야
조용 해졌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아저씨를 볼수가 없었다.
아마 살기가 조금 나아져서 아이들 군것질 꺼리가 엿 보다 구멍가게 에서 파는
사탕이나 과자들로 바뀌고 나서 일것이다.
지금은 순이네 할머니도, 그리고 엿장수 아저씨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사람의 기억 이라는게 참 대단한게, 어렸던 아이가 중년이 되어서 옛날을 회상하며
아련한 향수에 젖어 보기도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