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넓은 큰 단독 주택에 사시는,
충남 논산의 언니네에서,
내기억으로는 처음으로 김장을 했다.
별로 자랑할 일은 못되지만 아이들과 힘이들다고 언제나 언니는
넉넉한 김장을 해서 택배로 보내주곤 하셨다.
김치맛도 좋고, 언니는 동네친하게 지내는 여덟명의 친한모임이 있는데
품앗이로 돌아가면서 김장을 하기 때문에 힘이 안든다고, 결혼한 이후에
줄곳 나는 편히 앉아 받아먹고 있는 얌체 동생이다.
그래서 올해는 가서 거들기로 한것이다..
안와도 된다는 언니의 말을 어기고,
월요일엔 수업이 없다는 둘째와 함께 고속버스를 탔다.
평일이라서 길은 잘 뚤렸고, 느긋하게 딸과 얘기를하며 의자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있으니, 너무 편해서,
차를 가져 가라는 그의 말을 안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요즘 춥지 않아서 차안에서 바라보는 밖의 풍경은 꼭 봄이닥아드는
느낌이었다. 이젠 잎이 지어 앙상한 가지에 매서운 바람이 못살게
굴겠지, 너무 떨어서 보는것 만으로도 추워지겠지.
그래도 사계절에 익숙한 우리는 추운
겨울이 매력이 있다. 그래서 김장도 하는것이고...
하얀 눈도 볼 수가 있고...
둘째와 둘이서만 여행을 해본지도 오래되어서, 긴머리를 가진 늘씬한
딸이 밖에 나오니 더 예쁘다. 역시 난 고슴도치 엄마다.
그저 내새끼만 예쁘지..ㅎㅎㅎ
이젠 제법 숙녀티가 나서 엄마의 옷도 어울리고.... 내년엔 졸업반이니
그렇기도 하지....엄마도 그 나이에 아빨 만났었으니...
논산에 도착해서 언니네 집까지 딸의 손을 잡고 걸었다.
햇볕이 좋아서, 우리는 소풍나온 두 모녀같았다.
이미 언니는 배추를 소금물에 어제 절였다고 마당에는 무지하게 큰통에
배추가 담겨 있었다.
맛있는 점심-왜 언니네오면 밥맛이 좋은지,한그릇 뚝딱해치우고-을
먹고, 배추를 씻어 건졌다. 배추는80포기.
언니랑 민이랑 도와주는 동네 아줌마랑, 3살 짜리 손주까지 끼어서
4번의 물을 갈아가며 씻어건진 배추는 채반에 가지런이 놓아 물을 빼야
한다고 했다. 마당의 수도에서 물을 받아 배추를 씻는데 날은 안 추워도
물이 차니까 발에 쥐가 났었다. 이 나이에 그것도 일이라고 발에 쥐가
나고 원......
딸이 옆에서 놀려댔다.
"엄마, 나이가 몇이야! 엄마 맞아! "
에구, 결혼하고 이제까지 택배로 부쳐주는 김치를 받아먹고 산 엄마가
딸 앞에서 무슨 할말이 있겠나, 그저 헤헤헤~
넓은 마당을 뒷설거지까지 하고 나니, 휴~ 저녁때가 되었다.
우린 뜨거운 차를 마시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친정엄마가 없는 내게 언니는, 언니이기 이전에 엄마같은 존재이다.
두아이를 산후조리를 해주었고, 해마다 김장이며 양념거리를 챙겨주고
거의 매일 전화해 아이들이며, 남편의 안부를 물어주고, 징징대는 나를
다독거리고, 그러면서도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들어와서 사는 둘째
며느리의 큰손주를 봐 주고 사신다.
손주 재롱이 귀여워서 시간 가는줄 모른다지만, 팔도 아프고 여기저기
쑤시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어울려 다니는 온천다니는 모임에도 제대로 못나간다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같이 사는 며느리에게 나의 시선은 고울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늘 받기만 하는 처지라서 잘 해드려야지 하면서도 잘안된다.
젊은애들이 영화-지구를 지켜라- 를 본대서 같이 보려고 앉아 있다가
이내 방으로 와서 누웠다. 요즘 잠을 잘 못자는데다, 그것도 일을
한거라고 피곤이 몰려왔다. 온돌방이 따뜻해서 아주 좋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언니는 벌써 양념 거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김장을 하는게 보통일이 아니라는걸 실감했다.
왜그리 준비할게 많고 넣는 것도 많은지.......
속을 넣을 무를 채쳤다.물이 생긴다고 손으로 썰던 시어머님이 생각이
났다.언니말이 그래야 좋지만 요즘은 채칼이 좋아서 괜찮다고 했다.
12개의 무를 채칼로 썰고, 생강도 찧고, 파랑 갓도 썰고, 굴도 씻고,
대강의 준비가 끝나갈 즈음에, 품앗이로 다니면서 서로 김장을 해주는
언니의 친구분들이 세분이 오셨다.-맴버가 더 있지만 오늘은 세분이
온것 같았다.
해마다 그분들이 해준 김장을 내가 먹어오고 있었다니.....
아직은 60이목전에 있는 분들이라선지 곱고 젊으셔서 놀랐다.
우스게 소리를 해가며, 금방 김치속을 버무리고, 배추에 속을 넣고,
아침에 첫차로 달려온 큰딸과 우리는 왜 갔나 싶게 어정정 서서 구경만
했다. 그분들의 빠른 손놀림에 그저 멍@#$%~
반이상이 우리집 몫이고 언니네몫은 김치 냉장고로, 언니 큰며느리
몫은 문밖으로...
점심전에 모든일이 후다닥 끝나버렸다.
여러집이 해마다 그렇게 돌면서 김장을 해오고 있은지가 오래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맛있는 점심을 해서 서로 먹고,....
그분들의 걸죽한 입담과, 일솜씨에 , 또 돈독한 우정에 부러움이 생겼다
그러고보면 품앗이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말인지.....
김장 뿐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에 모두 그렇게 품앗이로 서로 도우며
사신다고 했다.
서로의 집안 사정도 알고 위로하고 기뻐해 주면서 사는 그분들이 정말
곱고 아름다웠다.
더불어 사는것을 실천 하며 사시는 분들의 우정에 나도 머리숙여 인사
를 드렸다.
고맙습니다.진심으로. 외로운 언니에게 이웃사촌이됨을....
늘 문을 닫고 사는 도시생활에 익숙한 내게 그분들의 모습은 참 귀하게 보였다. 물론 나의 성격탓도 있겠지만 영 이웃을 잘 못 사귀는 난
그렇게 지내는 언니가 다행스럽고 부럽기만 했다.
조카가 제 차로 김치를 실어다 준다고 나섰고, 우린 편하게 서울로
그 많은 김치를 가져올 수 있었다.
언니와 하루쯤 찜질방이라도 가서 느긋하게 보내고 싶었지만, 딸이
다음날 수업이 있다고 하고, 조카가 데려다 준다는 바람에 서둘러
왔기 때문에 못내 서운하다.
언니와 얘기도 많이 못하고....
그래도 김치 냉장고에 가득 김치를 채우고, 나머지는 담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자잘한 김치들은 예쁜통에 담아옮기고,나니 부자가 된듯
흐믓해 진다. 허리가 뻐근 하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삶의 버팀목이며, 사랑의 후원자인 나의 언니!
맛있게 익은 김치를 겨우내 먹으며 언니를 위해 감사해야지...
내게 언니가 있음을 가슴 저리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그분을 위해 기도해야지.
건강과, 행복한 노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