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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것은 묻지마라


BY 개망초꽃 2003-12-01

 배추를 가지러 서해 고속도로로 달려가던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김장철이라 배추와 양념거리가 필요해 충남서산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오늘 잠자기는 글렀고 피곤해서 내일 장사는 어떻게 해야할까가
 차보다 먼저 앞장서 달려가며 걱정이 되었다.

 어둠속에서 초행길은 우리차만 엉뚱한 세계로 들어선 듯한 묘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웅장한 서해다리,
 낯선 지방의 어느 도시,
 검은 도화지 같은 시골길,
 산을 돌면 우뚝 나타난 농촌마을.

 배추를 뽑아 놓고 기다리던 농부는 우리를 기다리느라 목 늘어지셨나보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집 처마 가로등이 환하게 켜 있었고
 농부 아저씨의 차 깜박이가 "깜빡 깜빡빡 "두 눈을 떴다 감았다 하고 있었다.
 밖은 숄을 뒤집어 써도 내 몸에서 와들와들 소리가 날 정도였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주무시고 내일 새벽 6시에 배추를 실자며
 나의 잠자리를 안내하던 곳은 황토방이였다.
 벌써 군불을 때 방바닥은 뜨끈했고
 쿵큼한 황토냄새와 솔가지를 태운 향긋한 소나무 냄새와 정겨운 시골 냄새가
 어울려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방바닥에 털퍽 앉았다.

 액자가 두 개,
 장독대와 초가집 사진이였다.
 이불이 두 채,
 몇십년은 된듯한 꽃그림이 얼룩덜룩 새겨진 뻘건색 담요였다.
 작은 고가구 장식장 위엔 통나무 숯이 하나,
 자연농법에 관한 책 서너권과 여나무권의 만화책,
 손 터치로 불이 조절되는 스텐드가 심플하게 놓여 있었다.

 잠을 자려고 얄팍한 요를 깔고 오래 묶은 담요를 덮고 눈을 감았더니 마렵지도 않던 소변 생각이 절실해 잠자리를 걷어내고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앞에 보이는 화장실로 가려다가 집 옆으로 갔다.
뒤엔 낮은 산이 보이고 집 옆엔 뭔가가 살아 있는 채소밭이 있었다.
난 아무도 보지않는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고 채소밭에다 실례를 했다.
어릴적에 난 이렇게 소변을 봤다.
밭에 들어가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볼일을 시원섭섭하게 보았고
나뿐만 아니고 어른들도 아이들도 노인들도 다들 그랬다.
거름되라고 우리 것 먹고 채소들이 씩씩하게 자라라고 좀 마렵다싶으면 가까운 밭으로 썩썩 들어가
바지를 훌럭까고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생리현상을 쉽고 편하게 해결하곤 했다.
실로 몇 년만에 이 짓을 하면서 옛날이 떠올라 추운것도 잊어버리고 나이도 잊어 먹었다.

선잠을 잤다.
'비가 내리나 보구나'
우당탕 우당탕탕 지붕을 요란하게 때리는 소리가 밤새 났었다.
'윗풍이 있어 어깨가 시리군'
어깨로 바람이 안들어 가게 담요를 끌어 덮어도 어깨위로 시린 바람이 틈새 공격을 했다.
'방바닥이 뜨끈하네 누가 불을 땐 나?'
어릴적에 할머닌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시느라 불을 땠다
그럼 방바닥이 뜨끈거리고 시리던 어깨도 없어지고 새벽잠을 푹잤었다.
꼭 그런 것 같이 바닥이 뜨끈하고 시리던 어깨도 녹고 새벽녘엔 잠을 잘 잤다.

자연의 조화로움은 신기했다.
내가 자던 황토방 뒤로 닭장이 있었나보다
내가 딱 일어나야할 시간에 닭이 목을 가다듬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하는데
그 목소리에 질려서 일어나야지 하는데
때맞춰 5시반으로 맞춰놓은 핸드폰이 알람 소리를 냈다.

밖엔 비가 아직도 내렸다.
같이 간 직원이 나와서 내게 물었다.
일기예보 알려주는 전화번호가 뭐냐고
그러기에 내가 그랬다 "나에게 세상것은 묻지마라"
직원은 배추를 싣고 가려는데 비가 내리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여서
오늘 비가 언제까지 내리는지 알아보려고 내게 물어보았는데
내 엉뚱한 대답에 허허 웃으면서 역시 나는 자연인이라나 뭐라나 그랬다.

비는 부슬비였다.
옷엔 젖어 들지 않고 땅만 젖어 있었다.
밤새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낸 건 황토방 지붕이 양철로 덮혀 있어서였고,
내가 시원하게 볼일을 보던 채소밭엔 갓꽃이 노랗게 피어서 나를 향해 베시시 웃고 있었다.
새벽녘에 등짝이 뜨끈했던 건 농부 아저씨가 내가 추울까봐 불을 때 주셨단다.
세상 인심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시골 인심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후한가보다.
그 놈의 목청 시원에게 뚫린 닭은 황토방 뒤에서 사람보다 더 편하게 살고 있었다.
야산에서 나무와 풀과 암닭을 여럿 거느린 숫닭,
저렇게 편하게 살아서 목소리가 당차고 거만했구나 했다.

배추를 실었다.
농약과 비료를 안 준 배추라 보기만 해도 믿음직스럽고 먹음직스러웠다.
사방에 얕트막한 산이며 너른 들판이며 집 주변에 늘씬하고 멋스런 소나무며
뭐든지 세상것이 아니고 자연속에 속한 자연스러움이었다.
물론 자연도 세상것이지만 난 웬지 세상것하면 단순했던 머리도 복잡해지고,
안생기던 욕심도 생기고, 없던 질투도 생기고, 안먹어도 되는 것도 먹게 되는
잡스러운 것이 세상이라고 결론부터 내버리는지......
세상에 속해 세상 사람들과 세상일을 하면서 난 절대 세상사람이 되기 싫은건지......
그래서 세상것은 묻지마라 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자연속에 묶여 자연만 쳐다보며 살고 싶다 했다.

염려했던 비는 그치고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보고 서울로 서울로 달려갔다.
옆에서 그런다.
"전 떠오르는 태양이 좋은데, 지는 저녁노을을 좋아하지요? 자연속에서 살고 싶으시지요?"
"어떻게 알았죠?"
다 보인단다. 내 얼굴에 써 있단다.
난 속으로 그랬다.
'자연은 배신을 안하지.인간만이 배신을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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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셨는지요.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장사를 하느라 많이 바빴습니다.
장사가 잘 돼 좋았지만
한편으론 글을 쓰지도 보지도 못 해 안타깝습니다.
이런 제 마음 글을 쓰시고 보시는 분들은 알겁니다.
시간 틈새를 잘 이용해 다시 글을 쓰고 읽으러 들어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