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장사를 하는데 늦은저녁 군인 이 들어와서 오뎅(어묵)을 말없이 먹더군요 아주 앳띠고 갸름한 얼굴에 크지 않은 키가 옛날의 제 동생을 보는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리 못 살고 힘들엇던지 ....
동생은 사창리라고 화천에 있느 부대( 보병)에 자대 배치되서 군 복무 하고 있었슴니다 근데 그대는 얼마나 못 살았는지 개밥에서 나오는 동태 대가리로 무를 설어넣고 국을 끓이면 식구들이 고기국인양 난리를 칠때엿죠 엄마와 난 동생들의 첫 면회를 갔습니다 남들은 떡이면 고기며 귀한음식 내무반 동기들에게 먹여서 아들 잘 바달라고 바리바리 사간다는데 우린 그저 차비만 해갓고 갔습니다 반신불수인 엄마를 모시고 난 이버스 저버스 갈아타면서 구불 구불 돌아서 물맑은 곳에 도착 했죠 이 사람 저사람 한테 물어서 동생이 있는 곳을 찻아왔습니다
정문에서 면회 얘기를 하고 좀 있으려니 동생이 뒤어오더군요 못살아도 피붙이고 자식이라 얼마나 뛰달리고 쩔뚝 거리면서 동생을 안고 손도 잡아보고 얼굴도 보고 엄마 얼굴에 환하게 피더군요 옆에서 전 반가워서 눈물이 나더군요 얼마후 선임 하사 란 분이 오더니 제가 책임지고 있는 병사라면서 걱정말라고 잘데리고 있다가 제대 시키겠다고 인사를 하더군요 엄마와 난 음식 대신 그저 고개 숙이고 허리굽혀 부탁한다고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잠시 시간이 지난후 우리 셋은 부대 밖으로 나왔지만 돈이 없어서 갈데가 없엇습니다 동생은 그저 부대 밖으로 나왓다는것에 대해서 자유가 느껴지는듯 했습니다 엄마는 동생보고 (야 들어가라 우린 가야겟다 )하시자 동생이 ( 왜 와서 금방 가냐고 나 낼까지 들어가면 댄다)고 말을 하더군요 난 말했습니다
( 종근아 우리 겨우 차비만 꿔갓고 왓어 그래서 가야대) 동생이 그 소리듣고 눈물이 글썽 거리더니 (엄마 나 월급탄거 있어 그러니까 가지말고 우리 저 집에서 하루 자고 가 응 부대 들어가기 싫어 ) 그러더군요 엄마는 ( 돈이 얼마나 있냐 방을 빌릴라면 군 지역이라 비살텐데)하시며 엄마도 헤어지기 싫은 모습이었죠 난 여기저기 알아바서 젤로 싼방을 얻어서 셋이 신발을 방에 구석에 놓고 이불에 다리 모우고 앉아서 얼굴만 바라보고있자니 서글퍼져서 울었습니다 동생이 (울지마 내가 제대하면 돈 많이 벌면 대지 나 나갓다올게 잠시 )그러더니 금방 들어오더군요 한손에 새우깡이 들려있었습니다 아사삭 소리내며 먹던 그 새우깡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훈련이 힘들었던지 저녁을 주인집에서 줘서 얻어먹고 있자니 동생이 그 새 잠들었더군요 엄마는 (이구 ~자식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새 잘까 )하시며 작은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더군요 훤히 밝은 아침 동생은 월급에서 방세주고 나머지 차비하라며 나 한테 주고는 버스 정류장에서 손을 흔들며 작은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엄마는 쓰린 속을 안보이려 먼 하늘을 바라보며 (먼 놈의 하늘이 저리 높다냐) 하시며 작은 실눈에 하얀 이슬이 맺힌걸 한 손으로 비비는걸 난 보았습니다 흔들리는 버스에 작아지는 동생의 모습은 군청색으로만 보여지고 이내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동생의 월급으로 (군인 월급)하룻밤 자고 먹고 헤어지던 생각에 가슴이 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