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아침 부터 비가 부슬거린다.
아파트 뒤에는 중학교가 위치 하고 있어서 비오는 등교길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차들이 뒤엉키고 빵빵거리며 질서가 무너지는 날이기도 하다.
줄이은 차들을 빠져 학교로 향하는 교복입은 어린 학생들을 보면
위험함을 느낄 수 있어 안스러움이 함께 하기도 한다.
안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어쩔 도리 없이 나또한 내자식의 노예가 되어
차를 움직여 아이의 학교로 향하는 마음이야 무엇에 비교 해야 할까?
며칠간 귀가 시립다면서도 엄마의 중벌로 걸어서 학교행을 하던 딸아이를
내리는 비 탓에 등교를 시키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비오는 출퇴근길은 작은 시골동네 이지만 유난히 번잡함을 느낀다.
다른 지방으로 거쳐가기 위한 도로가 연결 되어 있기도 해서 더더욱 차들이 밀려
올 때가 많다.
기다림이 싫다는 생각이 들어서 좌회전 방향을 우회전으로 방향을 바꾸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번잡함은 매한 가지였다. 출근길과 맞물림의 시간대여서 인가보다.
돌아오는 길에 삼거리 교차로를 만났다.
운전자들이 주의를 요하는 길이기도 하다.
차들이 중간지점에서 몰려 있다.
나도 가던 방향으로 어쩔 수없이 끼워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려오는 차. 우측으로 밀고 들어오는 차. 뒤에서 따라오는 차. 아무리 크략숀을
눌러대도 앞차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옆으로 살짝 세워둔 화물차량이 보인다. 그래도 앞으로 전진해주면 엉겨 있는
차량들이 쉽게 이동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계속 나보고 그냥 전진하라는 수신호만 보내준다.
나도 질세라 마구 크략숀을 눌러 보았다. 아니 백미러도 보지 않는가.
내려오는 차와 나의 차가 끼여서 움직일 수도 없는데 어떻게 전진을 하라는 말인가.
그러는 사이 엉겨진 차들이 사라지고 전진할 기회가 왔다.
차에서 늙수그레한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린다.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의 학교 전직 교장 선생님이셨던 여러분 뵈었던 내가 존경해 왔던 그분이
아니었던가?
아이들의 은사로서 그저 바라보았던 존경의 그분 말이다.
퇴직후에도 길에서 만남이 있으면 인사를 깍듯이 드렸던 분이기도 했더랬는데
참으로 실망이 크다.
할수 없다 . 일은 벌어졌다 . 나도 한마디 된발음으로 고함이 난다.
"조금만 앞으로 당겨 주시면 다 원활한텐데 차좀 빼주시지 왜그러고 계시는데요?"
"어디로 빼는냐고 되묻는다."
어이가 없다.
세워둔 화물차 옆으로 한대의 차가 지나갈 만큼 공간이 있었고 그리고 그 공간으로
앞으로 빠져 주면 차량 한대도 없는 텅빈 공간이었는데도...
내려오는 차와 나의 차가 그 젊잖은 교장선생님의 미련함 때문에 잠시 짜증스러워
하고 밀린 뒷차들이 불편함을 겪는데도 말이다.
"앞으로 양보운전좀 하시죠"
한마디 던지고는 집으로 향했다.
나의 입에서는 중얼거림이 튀어나오고 그리고 화도 바친다.
아직도 내가 무엇인데...
그러한 의식이 엿보여짐에 회의가 느껴온다.
사람은 겉껍질로 판단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언행에서 그사람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저러한 에고이스트에게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익혔을까?
작은실천에서 타인을 위한 배려를 솔선수범 할 때 그때 그것이
일등 시민의 자격은 아닐런지?
이웃학교 내가 아는 한분의 교장 선생님은 퇴근하신 후에도 항상 학교를
둘러보기 위해 학교를 다녀 가신다.
출근은 항상 직원들 보다 먼저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학교에서 어떠한 환경미화 공사를 한다든지 그럴 때에도 평일에는 양복차림으로
인부들과 함께 하시고 공휴에는 운동복차림으로 관여를 하셔서 바른책임을
하시려는 열정을 보기도 한다.
때론 이러한 열정이 부하 직원들에게는 부담이 될지도 그리고 반발의 요인이
될 수도 있음이기도 하지만
한결같으신 그분의 낮은 생활상에서 교직자로서의 참사랑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존경하고 싶은 분이기도 하지만.
포장되었을 때의 사람과 포장되지 않았을 때의 사람이 틀리고 그리고 현직에서
물러났음에도 모든이에게 통용시키려 하는 권의의식의 못됨을 나는 고발하고 싶다.
자신의 지식을 뒷받침삼아 한사람의 온전하고 편안한 인격자로서 제자들이나
지역민들의 위해서 남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함께 하는 주민들 중에 도처에서 퇴직한 교장선생님들이 여러분 계신다.
주민 모임을 가질 때에도 젊은 사람의 발언은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신다.
여러번 다중적으로 경험을 하게된 나는 사람에 대한 싫증이 난다고 할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참석율을 줄이고 싶어 질 때가 많아진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우리들의 의식도 변화여 가야 한다고 여겨진다.
낮은 마음으로 살아 간다고 해서 인격이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닐테니까.
작고 사소한 시간의 경험으로
느끼고 깨달은 신변잡기로 나의 삶의 철학에 보탬으로 엮어 가고 싶다.
한사람의 옹고집은 여러사람이 불쾌함을 느끼기도 함이었다.
서로가 잘 어울려 짐은 밝은 사회의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