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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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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체감온도 영하


BY 소심 2003-11-17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에게

    크게 마음놓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여파로 오던 잠이 달아나고 이렇게 오밤중에

    방황을 하고 있는 나다.

 

    평소에 나무랄 것이 없던 딸아이다.

    항상 알아서 잘 처리 해주고 나의 가정교육의

    궤도 방침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는 아이다.

 

    수능을 마치고 조금은 갈등스러워 하고 

    자유스러워 지고 싶어하는 아이여서

    지난주 가족나들이를 명동에서 치루어 주었다.

 

    아가씨로 성숙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려주기 위해

    샤링형 치마에 누비패딩까지 그리고 아빠가 골라준

    하이힐형 구두까지......

    그것이 친구의 부러움을 샀던 모양일까?

    서울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친구와 전화질 해대던 아이를

    나무라고 자중하라고 일렀건만

    친구랑 오늘 나의 허락도 온전히 받지 않고 대구행을 감행

    하고 돌아왔다.

    기차표도 예약해놓았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해놓은것 같아

    나의 마음을 비워 주기로 하고 아이보다 먼저 성당으로 향해야

    했던 나는 알아서 잘하고 다녀오라고 너의 이미지 손상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고 일러고 주일을 지키고 돌아온뒤

    여행중인 아이와 통화를 가져보았다.

   

    "엄마! 엄마의 벨로아 구두 내가 신고 왔어요."

     아빠가 사준 하이힐 구두가 조금 부담이 되었나보다 생각하고

     "알았다"하고 돌아올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돌아온 아이의 신발은 딸아이가 신고 다니던 평소의 구두였다.

   

     "엄마 신발은"?

     "엄마 친구좀 빌려 주었어"

      그때부터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고 조금 끓어오르는

      화를 참다가 아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엄마의 허락없이 대구행을 행한것에서 부터. 허락없이 엄마의 물건을

      빌려준 것에서부터.

      대구를 다녀온 이유부터

 

      방학에 한두번쯤은 친구들이랑 연례행사로 저희들 끼리 대구정도

      가끔씩 아이쇼핑도 즐길겸 안목도 넓혀주기 위해서 여행을 보내주어

      오긴 했어도

      불과 일주일 전에 가족여행을 가졌고 저의 용돈에서 해결했다고 하지만

      교통비며 돈의 지출에 대해서도 짚어 주어야 겠다는 모진 생각으로

 

      나의 벨로아 구두는 구두굽이 높은 것을 못신는 내가 몇년만에

      근근히 마련한 아껴두는 신발이기도 했는데.

      그것을 친구에게 빌려 주었다니

      상황 대처를 엄마의 물건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었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늦은 밤에 구두 찾아오라고 난리 법석을 떨어 보았다.

 

      허트러지는 아이의 모습이 싫다.

      조금 치솟으려하는 아이의 사치욕구가 싫었다.

      자라면서 획일한 된 교육을 받았던 나여서 아이들에게는 원만하고

      자유스럽고 그리고 저희들의 눈과 귀로 옳고 그름을 선택하도록

      자유의지를 항상 배려하던 나였지만

      오늘 딸애의 방식은 나의 마음을 허허롭게 만들었다.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짚고 넘어야 할 사항이라고 스스로 다짐해 보면서

      평소에 없던 화를 내고 말았다.

 

      아니 해야할 일에는 단호함을 가르켜 주고 싶음이 나의 생각이다.

      오늘 하루 친구랑 대구시내에서 발에 맞지 않는 구두로 거리를

      배회하면서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아이들 이지만 그래도 나는 단호한

      태도로 아이들의 행동를 짚어야 한다.

      딸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이기 때문에.

 

      자신의 그릇의 크기만큼 밝고 그리고 명랑하게 혜안을 가진 여인으로

      성숙해주길 바램하는 엄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밑바닥을 느낄수 있도록 지도해 주려 한다.

 

      "엄마의 허락도 없이 너희들의 욕구를 이런방식으로 채워햐 하나"

       깊은 잠에 취해 있는 딸아이는 꿈속에서 엄마의 이 질문에

       여러 갈래의 답변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의 욕구대로 다 수용해 줄 수 없었던 나의 마음이 조금 싸하다.

       이또한 부모이기에 겪어야 하는 기분 아닐까?

       아이와 잠시 가졌던 기분탓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렇게 잠을 잃고 만다.

       교과서와 같은 삶의 방식은 아닐 지라도

       그리고 모든이들이 바라는 일류같은 삶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삶의 선에서 어긋나지 않고 자신의 꿈과 현실을 위해서

       열심히 어긋나지 않게 그리고 인내하면서 

       자신을 가꾸어 가주길 바램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이제 내일 아침 등교 부터는 걸어서 등교

       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삼년이라는 길다면 긴세월동안 공부라는 미명하에 너무 아이의

       삶에서 잃어 버린것들이 많아 졌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

       등교길을 향하는 아이는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가져줄 것임에

       이런 저런 갈등의 마음이

       나의 체감온도를 뚝 떨어트린다. 영하의 온도로....

 

       딸아 엄마의 영하의 마음온도를 상승시켜 주기를 바램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