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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시어미가 왜 그 모양이냐..


BY 모드리게 2003-11-11




자넷 알렉산더 : Common Ground 


아흔을 바라보는 서울에 살고 계시는 
시어머님이 저희집에 오셨습니다.
(11월 1일)
증손자 여준이의 백일을 축하 해주시려..
11월 25일이 여준이 백일인데 날이 추워지면
못 올지도 모르겠다면서 미리 앞당겨서 오신거지요.

전날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아다
새벽 2시까지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뒷동에 살고 있지만
부르지 않고 저 혼자서..

직장이 멀어서 이사를 가겠다는 녀석들이
아이가 생기고 나니까 안가겠다고 합니다.
저는 멀리 이사 가라고 떠밀었는데..
퍼 주기 좋아하는 아버지(혹은 시아버지)곁을
떠나면 즈이들이 손해라는 얄팍한 계산이
앞선건지 아니면 여준이 키우는 게 장난이
아니어서 그런 건지..

설사 부른다 해도 여준이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뻔한 노릇이고.
그리고 그냥 저 혼자 뚝딱 해치우는 것이 편해서..
자로 잰 듯 일목요연하게 계획을 세워서
일사천리로 후딱후딱 진행하는 것이 
제 특기이기도 하고..

이를테면 몇시까지 재료를 씻고
표고 버섯전은 몇시 몇분까지 끝내고
호박전은 몇시 몇분..
새우튀김은.. 나박김치는.. 
이렇게 해서 모든 메뉴는 몇시까지
설거지는 몇분안에 끝마치고..
몇시에 목욕하고 몇시에 잠자리에 들어간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계획안을 짜서 
그 시간안에 끝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리고 약간의 결벽증이 있어서
내 살림은 누구에게 맡기는걸 
싫어하는 편이기도 하고..

상다리 휘어지게 상을 차려
4代(시어머님 우리 아들내외 여준이)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끝냈고
며늘아이가 설겆이 하려고 일어 나길래
그냥 여준이나 보라고 했지요.
그러나 시어머님은 젊은 사람이 해야지
너는 손자(여준이)나 보고.. 그래도 저는 
며늘아이더러 아이나 보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계획을 세웠거든요.
몇분안에 그릇들을 싱크대로 옮기고 
몇분안에 설겆이 끝내고 
몇시 몇분에 커피와 과일을 깍아 내놓기로..
역시 이 계획안이 차질없이 진행
될려면 저 혼자 후딱 해치우는 것이..

정말 귀신같이 해치우는게 제 솜씨..
요령이 있지요.
식사 하기전에 싱크대 주위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미리 빈 그릇에다 트리오 풀어놓고 
전체 설거지 그릇을 크기별로 3개의 큰 쟁반에다 
나누어 담아서 씻고 헹구고 하면 아무리 
그릇이 많아도 금새 끝납니다.
우르르 쌓아서 하느니 3등분으로 
나누어서 하는것이 지루 하지도 않고..

두 아이들이 여준이를 안고 즈이들 집으로
간후 저는 시어머님으로부터 강도(强度) 
높은 교훈을 한참 들어야 했습니다.

이젠 네 며느리도 이집 식구가 되었으니까
시킬 건 시키고 해야지 무슨 시어미가 왜
그 모양이냐.. 그렇게 물러 터져 가지고..
애비(남편)말 들어보니 성깔이 있다고 
들었는데 며느리 한테는 왜...

시어머님은 아무래도 옛날 전통을..
상대방이 잘못하면 끝까지 사과를 
기어이 받아 낼 정도의 성깔이야 있지만
지킬 건 반듯하게 지키되 저만의 생활방식이랄까
생각 같은 건 상대방에게 주입 시킬려고 
애쓰지는 않지요. 사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구요.

상대방의 사고방식이 저하고 많이 틀려도
그저 그 사람의 개성이려니 봐주고 넘어가는
그런 좋은 점이 저한테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아무개와는 전혀 안 친할 것 같은 데
친하는 것 보면 그것 참 희안 하네..

그래서인지 저하고 친한 사람中 
몇몇은 내일 당장 이사 가는 것처럼 
집안 꼬락서니가 엄청 지저분한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이상하게 남의 집 가면 그런 집이 
편하게 느껴지니 이것도 참 별일 중의 별일..
그러나 내집은 깨끗하게 반짝반짝 윤이 나야 합니다.

아무튼 며느리를 보면서 꼭 그래야 
한다는 姑婦간의 전통 사고방식엔
나부터라도 과감하게 탈피하자..

친정가서 밤늦게 올 때나 잠수에 들어갈 때..
새벽까지 게임하다 남편(아들) 출근 못 시켰을때는
단호하게 야단을 쳤지만 살림엔 한해서는 
일절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준이를 안아 주면서 이뻐해줄지언정 
어떻게 어떻게 키워라식의 주제넘은 소리도 일절..
대신 베이비 월간지를 다달이 사다 주는 것으로..
潛水病도 며늘아이의 개성이겠지만 이것은 
중요한 전화를 해도 통 받지를 않는등
주위 사람들을 들들 화가 나게 만들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는 것이 제 志論... 
다행스럽게도 여준이를 낳은후로 깨끗이 치유..

친정엄마(안사돈)도 못 고쳐서 애달아 했던 
딸(며느리)의 고약한 버릇을 제가 말끔하게 
고쳐놓은 셈이니 따지고 보면 시어머니티를 
낸 것도 같은 데...하하하

어쩌다가 아들집에 갔는데 빨래가 쌓여 
있어도 며칠 설겆이 안한 그릇이 싱크대에
그대로 널부러져 있어도 뭔 말 안 했지요.
네 살림은 네 살림.. 내 살림은 내 살림..

요 녀석들이 반찬 떨어지면 곧잘 저희집으로
쳐들어 오는데 土, 日曜日은 나도 편하게 
쉬자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다른 집은 시부모가 일요일에 방문 
안 한다고 야단치면서 강요를 한다는데...

시부모 집이라고 해서 설겆이를 며느리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여준이가 많이 크고 또 제가 몸이 아프면
며늘 아이가 알아서 하겠지만 그 때까지는 
구태여 시킬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제가 빨빨하게 움직여 가며 잽싸게 시간 
오래 끌지 않고 설겆이 할 수 있는 것도 
그 만큼 제가 건강하다는 증거니까요.

아기 키우는 것도 힘들텐데 일 시켜 먹는
시어머니란 원망을 듣느니 그저 제가 해치워 
버리는 것이 속이 편한데 그러나 제 시어머님은 
제 생각이 많이 틀린 거라면서 호통만 치시네요.

아들 키울때는 잘 몰랐는데 나이 들어서
손자 봐 주는 게 굉장히 힘들더군요. 
낮에 여준이 맡긴 날은 손가락 까닥하기 싫어 
남편과의 저녁식사는 시켜 먹는 것으로 
해결하고 초저녁부터 잠에 골아 떨어집니다.

아들이 격주로 주5일제를 시행하는 회사에
다니는데 저는 그런 날은 둘이 영화구경 
하고 오라고 등을 떠다 미는데 대신 
여준이 보아주는 종노동???에..

제가 왕년에 지독한 정말 지독하게 
끔찍했던 영화광이었던 지라..
다행히도 두아이들도 영화감상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강요는 아니었구요
며느리가 육아에 치여 스트레스 쌓이면 
결국은 그 禍가 시어머니한테 직빵 댓빵으로
미치니까 저도 꾀를 쓴 편..

물론 제 시어머님의 마음 저도 잘 압니다.
며느리를 부려 먹는다기 보다는 윗사람로써의 
체통을 지키라는 그 뜻임을..
그래도 저를 야단치고 깨우침을 주시는 서어머니가
아직도 살아 계시다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미운정 고운정이 켜켜이 쌓이면서 고부간이 
정말 곰삭은 친구처럼 가까와 지려면 이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 하다는 것을..
아니 시어머님의 뜻을 헤아릴려면 이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 하다는 것을 
젊은 며느리님들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내년 여준이 돐 때 꼭 오셔야 합니다" 했더니
"글쎄다. 내가 그 때 까지 살아 있을려는지..."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고개를 핵 
돌리고 말았습니다.

손자며느리에게 투덕투덕하게 잘 생겨서
절대로 가난하게 살지는 않을꺼라는 德談과 
함께 둘이 잘 살아야 한다고 신신 당부 
하시면서 꽤 많은 돈을 주시기도 하셨는데
퍼주기 좋아하는 시아버지 만난것도 인물탓??? 
시어머님 말씀처럼 제 며늘아이가
인물 하나는 정말 시원시원하게 잘 생겼습니다.

며칠을 증손자 재롱에 시간을 보내려고
오셨지만 어제(11월 2일) 죽산 별장에 
사시는 둘째 시아즈버님이 외제차 몰고 
득달같이 오셔서 모셔가는 바람에 
하루만 머물다 가신 게 무척 아쉽군요.

이렇게 마주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쩌면 生時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일이건만..
둘째형님이 언제나처럼 토요일에 
안부 전화 드렸다가 막내 아들집에(우리집) 
가신걸 아시고 부리나케 쫓아와서 모시고 간것입니다.

저희는 며칠 더 모시고 싶다고 했는데도
정말 아무도 못 말리는 대단한 孝心..
한편으론 둘째 시아즈버님과 남편이 
누가누가 효도를 더 잘하나 내기 
하시는 것 같아서 보기는 좋았습니다.

덕택에 저는 남아 돌아가는 반찬을
두 아이들에게 한보따리 챙겨 줄 수 
있는 선심(善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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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뮤크박스에서..
해석을 붙이면 '공감하는 것들..'
최근에 포스코 광고음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