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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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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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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BY 土心 2003-11-07

 

오늘 11월 7일자 모 일간지 일면에 실린 돈 다발 구경 하셨나요?
"억?!.."하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아 턱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언제부턴가 몇 억도 아니고 몇 십억도 아니고 몇 백억이란 돈 얘기가 다반사로 세상 입에 오르 내리 길래 그냥 그런 숫자 놀음도 있나 보다 혼자 그렇게 생각 했더랬습니다.
아예 개념도 없고, 놀랄 기운도 없고, 이미 의식도 마비 되고, 새로운 소식이라는 것에 알러지 반응도 일어 나고 해서 모르는 게 약이다 그 묘약만 끌어 안고 살아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미처 놀라지 못한 일들이 남았다는 게 오히려 놀라움입니다.
70억이란 돈이 저렇게 많은 건지 미처 짐작도 못했는데 그렇다면 백억 단위의 돈은 그 부피가 얼마나 되는 것인가 상상이 어렵습니다.
세상이 원리전도몽상 되어 사람 사는 집에 사람 대신 돈이 모셔지는 기현상을 보고 들어야 하는 것도 편치는 않습니다.
29평 빌라가 금고 용도라니...
각설 하겠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아기 돼지 보기 민망하여 고만 하렵니다.
**************
한 잠을 곤하게 잤나 보다.
슬며시 눈 떠지기에 사방을 두리 번 거렸으나 여전히 캄캄한 것이 아직은 한 밤중인 것 같았다.
뒤척이다 보니 왠지 옆이 허전 했다.
더듬다 부스스 일어나 살펴 보니 덩그마니 어둠 속에 나 혼자였다.
문고리 잡아 슬며시 밀어 보니 거실은 칠흙이 아니었다.
구석진 방에서 거미줄 같은 불 빛 하나 새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기에 다가가 살짝 벌어진 문 틈으로 빼꼼이 눈부터 디밀어 보았다.
우선은 너구리도 잡을 만큼의 담배 연기가 코를 자극하더니 이내 남편의 굽은 등줄기가 어슴프레 눈 안으로 들어 왔다.
순간 침이 꼴깍 넘어 가는데 그 소리에 내가 놀라 뒤로 주춤 뒷걸음 치고 말았다.
정말 촌각의 시간 이었지만 나는 분명 보았다.
불청객 같은 외로움과 고뇌에 마딱 드려 한 판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년의 남편 모습을...그러니 감히 범접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난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고 맘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공연히 자고 있는 아이들 방에 가서 부스럭 대며 이불만 몇 번씩 고쳐 덮어 주었다.
기척에 아마 남편은 잠시 휴전을 고 하고 후퇴 하는 듯 했다.
안 들킨 줄 알고 시치미 떼며 나오는 남편에게 난 실눈으로 잠시 요염을 떨어 주었다.
'나 담배 딱 한 대, 아니 한 모금...정말...'
버벅 대고 너스레 떠는 남편에게 나 역시 맘에 없는 담배 잔소리만 한마디 거들고 만다.
허나 우린 서로 안다. 담배가 아님을...
그저 머쓱함을 주워 담으려고 애꿎은 담배만 나무라고 벌 주는 것임을 분명 안다.
"이제 다시 잡시다"
말꼬리 돌리고 씩 웃으며 남편은 이불 속으로 들어 간다.
난 두 팔 벌려 남편을 안아 본다.
근데 이 작은 가슴으론 남편의 그 넓은 가슴이 다 안아지질 않는다.
한 아름에 감싸지지 않아 한 뼘 남는 남편의 등허리가 유난히 애처롭다.
그저 아가 재우는 손길로 다독 다독 다독 여만 준다.
어느 새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가락 가락 들린다.
이 쬐그만 품에서나마 그래도 잠들어 준 남편이 고마워 눈물 한 방울 또로록 베갯머리에
흘려 놓는다.

이 시대 가장들의 이 고단한 삶을 세상 물정 모르는 새가슴이 어찌 헤아리랴.
혼자 두 아들 키워 가며 꿋꿋하게 살고 있는 내 단짝 친구는 종종 말한다.
'피고름 흘려 가며 돈 버는 거다...신랑한테 정말 잘 해라...등 따시고 배 부르니 별 투정 다 한다...'
표현이 다소 과격 해서 새초롬 내 삐질 때도 더러 있지만 가슴에는 꼭꼭 새겨 둔다.
오늘 내 남편이 까만 밤 하얗게 지새며 짊어 지고 있던 등짐은 정녕 소금인 줄 알고 물에 빠졌다가 물 먹은 솜이 되어 버린 나귀의 등짐 바로 그거 였을 거란 생각을 한다.
億, 億의 큰 자리 숫자가 한 푼 두 푼의 소탈한 가장에게 살 의욕이나마 상실케 말았으면 하는 바램 하나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