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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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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을 따면서....


BY 아침이슬 2003-11-04

한번씩 휘휘 불어오는 늦가을 새벽바람에
감잎 서걱거리는 소리도 함께 묻어온다
희뿌연 아침속에 달무리마냥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감알이
가을걷이 할 때가 되었음을 말해주는듯하다

옛 생각하며 감꽃 입에 톡 깨물어 본지가 엊그제 이건만
빠알간 감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계절이 되었다..
"저걸 따야하는데...저걸 따야만 되는데"하고 지난 게 그새 몇 주일이다.
재작년에 깎아 만든 반쯤 말린 곶감을
새앙쥐처럼 들락거리며 따먹던 딸아이가 매일 매일 졸라대는 통에
오늘은 꼭 따야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나뭇가지에
달린 감을 따기가 그리 쉬운것만은 아니니 한숨이 휴 나온다...

나 어릴 적 친정 집 뒤뜰 한켠에 서있던 감나무는
이른봄부터 가을까지 즐겁기만한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감잎 빼죽빼죽 나오면 그게 언제 꽃을 피울까 매일 목이 빠져라 올려다 보았고,
감꽃이 하나둘 노란 왕관 모양의 모습을 보이면
그게 언제 떨어지나 눈이 또 빠졌다...
어느 날인가 나무밑으로 쪼르르 달려가면 노란 감꽃이
밤새 우수수 떨어져 꽃밭이 되어있었다....
연신연신 입으로 주워넣으며 티셔츠의 앞자락에 쉴새없이 담아와
우린 왕관 목걸이를 만들어 기다랗게 걸고 다녔다..

잎이 무성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으면
쉴새없이 포로록 포로록 날아드는 매미 소리가 참으로 우렁찼다....
엊그제 할아버지 졸라 만든 기다란 매미채를 들고 살금살금 나무밑을 기어다니며
퍼득퍼득.꽥꽥 매미채에 갇힌 매미를 많이도 괴롭혔었다..
하나둘 감이 주황색으로 물이 들기 시작하면
마루에 책가방 던져 놓기가 무섭게 뒤안으로 달려가
입을 벌려 목을 쭈욱 빼고는 감홍시를 기다리곤 했었다..
턱....하는 소리와 함께 바로옆 바닥에 감홍시가 떨어질 땐....
참으로 야속하여. 쩍 갈라져서 납작하게 누워있는 감홍시 껍질을 살짝 밀어내고 혀를 대고 핥아먹었다..
군침을 꼴깍 꼴깍 삼켜가면서....

대나무 장대를 내어주고 방으로 들어 가버린 남자대신 나무를 올랐다....
어릴 때 수도 없이 했던 일인데 발이 왜 자꾸만 후들거리는지..
몇살 먹지도 않은 나이를 스스로 들먹이게 되었다...
작년에 내일내일 하다 곶감도 깎지 못하고
감식초를 만들다 실패해 모두 버린 감 생각에 올핸 야물딱지게 나무에 달라 붙었다...
올해는 곶감 좋아하는 딸아이 입에 맛있는 곶감을 넣어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