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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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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를 꺼냈다.


BY 개망초꽃 2003-10-30

 길 건너편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낙엽을 쓸고 계셨다.
 하나도 남김없이 쓰시겠다는 꼼꼼함이 여기까지 전달이 되어 보였다.
 난 물건 진열하던 일을 멈추고 카운터에 앉아 구경을 했다.
 마을 버스가 지나가면 잠시 가려지고,
 매장으로 손님이 오시면 계산을 하느라 못보는 사이,
 아저씨는 나뭇잎을 제법 많이 걷어 들이고 있었다.
 콩깍지를 쓸어 모은 듯도 하고,잡스런 쓰레기를 모아 놓은 둣도 했다.
 비닐포대에 담으시길래 이제 일을 다 끝내셨구나 나도 물건 진열을 할까 했는데.....
 낙엽에 불이 붙어 저녁 어스름 거리가 환해지고 화려해 지는게 아닌가.
 낙엽은 붉은 빛을 내며 뽀얀 연기를 하늘로 올리며
 부질없는 세상살이를 미련두지 않고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아저씨는 포대에 담은 나뭇잎을 조금씩 불속에 던져 넣으시며
 늦은 가을의 지져분함들을 깔끔하게 태우고 계셨다.
 그러더니 학원갔다오던 계집아이 둘이 그 앞에 서서 아저씨와 함께
 나뭇잎을 불 속에 던지며 집으로 가던 길을 잊어 버렸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남학생이 저전거에서 내려
 또 같은 행동을 하고 돌아갈 길을 잃어 버리고 있었다.

 어릴적 산골에서는 아궁이에 나무나 볏짚이나 콩깍지 까지 때면서 밥을  짓고
 찬 방바닥을 따스스하게 만들었다.
 우린 그 옆에서 불장난을 하며 까불었고,
 그러면 어른들이 밤에 오줌 싼다고 그 신나는 장난을 못하게 하셨다.
 불장난하다가 혹여 불을 낼까봐 걱정이 되셔서 이런말이 전해졌으리라.
 혹여하고 걱정하던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동생들과 논두렁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볏짚을 산더미처럼 싸 놓은 곳에 불이 붙고 말았다.
 옛날엔 그 볏짚도 땔감이었고 생계수단이었는데......
 불은 순식간에 번져 볏집을 다 태우고 말았는데,
 동생들과 난 그 성나고 무서운 불을 보며 놀래서 떨기만 했다.
 며칠밤낮을 오줌은 안쌌지만 악몽에 시달려 깊은 잠을 자지 못했고 지독한 몸살을 앓았었다.

 낙엽 태우는 모습을 창안에서 보니 그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벌렁 거린다.
 돌아가고 싶은 어린날이지만 볏짚을 몽땅 태웠던 그 해 그 겨울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낙엽은 연기가 되어 세상 미련없이 훠어이 하늘로 올라가고
 아저씨도 키큰 빗자루를 껴안고 경비실로 돌아가고,
 계집아이들도 보조가방을 흔들며 집을 찾아가고,
 자전거를 탄 학생은 자전거를 끌고 길을 떠났다.

 난 따스한 불가가 그리워 난로를 꺼내려 창고를 찾았다.
 작년에 카운터 책상 밑에 두고 강약 단추를 누루던 자주색 작은 난로가 어디갔나?
 난로는 비닐에 싸여 한쪽 구석에서 움직이지 않고 몇달을 보냈으리라.
 자신을 꺼내 줄 주인을 기다리고
 내 손과 다리를 따스하게 뎁혀줄 이 순간만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먼지 묻은 비닐을 벗기고 내 책상 밑으로 가지고 왔다.
 코드를 꽂고 약으로 조절을 했더니
 난로는 빠알갛게 불을 켜고 기쁘게 내 책상 밑을 비춰 주었다.
 난 두 손을 벌리고 열심히 자신의 일에 충실한 난로 앞에 내 밀고
 손님이 오면 일어서고 손님이 가시면 또 손을 난로 앞에 디밀었다.

 가을이 왔군,단풍이 드누나 하면서, 사색에 접어 들까말까 하는데, 겨울이 성큼 다가섰다.
 손님들은 매장 유리문을 열고 들어 오시며
 아이~~춥다하며 인사아닌 인사를 하고 종종 걸음으로 장을 보고 겉 옷을 여미고
 춥죠?하며 인사를 하고 가신다.
 아까 어떤 손님은 손에 나뭇잎 두 개를 들고 이 곳엘 오셨다.
 가는 가을이 아쉬워서 오다가 나뭇잎을 주었으리라.
 한 잎은 목련잎 같고 하나는 뭔 나뭇잎인지 모르겠지만
 그 잎을 보니 앉자마자 엉덩이 들고 가려는 가을이 무척이나 서운하고 아쉽다.
 나뭇잎을 손에 든 손님은 모과차를 사시며 모과차 담은 봉지에 나뭇잎도 담아 가지고
 매장 유리문을 딸랑 열고 가셨다.
 매장 문엔 작은 쇠종이 달려 있다.
 그 종도 자신의 할 일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한다.
 손님이 오시면 자신의 몸을 힘껏 부딪혀 "딸랑~~랑랑~~손님 오셨어요."한다.
 귀엽고 이쁜 것.
 손님이 가시면 "딸라앙~~또 오세요." 한다.
 착하고 성실 한 것.

 내게 있어 난로의 대명사는,산골 초등학교 때 쓰던 무쇠난로다.
 선생님이 때 주시던 난로.
 장작이었다.점심시간 때 쯤이면 배당 받은 나무가 동이나서 오후엔 서늘한 난로가 되는......
 송송 썬 김장김치에 들기름 한 숟가락 넣고 그 위에 밥을 얹은 양은 도시락.
 난로위에 아이들 도시락을 아슬아슬하게 쌓아서 찬 도시락을 데웠다.
 수시로 아래 있는 도시락은 위로 올리고 위에 있는 도시락은 아래로 내리면서
 내 도시락이 난로 바로 위에서 오래 머물러 김치가 알맞게 익기를 속으로 얼마나 바랬던가.
 난로 가까이 앉은 아이들은 볼딱지가 익어 벌개지고,
 난로에서 멀리 떨어진 아이들은 추워서 오돌돌 떨던 시절......

 아 ...참...따스하다 오른쪽 다리 가.
 앞으로 몇달동안은 이 작은 난로와 함께 장사를 하게 되겠지.

 작년엔 내가 좋아하는 회색빛 긴 치마를 난로가 잡아 당겨 낼름 구워 먹은 적이 있었다.
 그 땐 난로가 얄미웠다.
 조심하지 못 한 내 탓이면서 말이다.
 올 해는 아주아주 조심해야지 .
 언제 난로가 내 멋스런 체크무늬 치마를 날름 궈워 잡술지 모르니까.

 난로를 옆에 두고 있으니 추위가 언제였는지 모르게 싹 가시고 노근노근하니 졸음이 온다.
 책상에 엎드러 자고 싶다.
 난로 가까이 앉은 아이가 몸이 노근노근 풀려 졸면
 선생님께서는 난로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아이와 바꿔 앉게 했었는데......
 내가 졸면 손님들이 바꿔 앉자는 말은 안하겠지만 창피하니까 참아야지.
 프림 넣지 않은 맑은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