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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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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3>-온 몸으로 장대비를 맞아라.


BY eheng 2001-03-03

그날도 우리 몸부림스는 모였다.
어릴 적 교회 친구 경주(스무살에 재미교포와 결혼하여 미국에 살고 있다.)가 수 년 만에 미국에서 동생 결혼차 귀국했고, 그 김에 옥자와 경옥이도 같이 만나기로 했다. 만남의 목적은 역시 고향에 온 친구의 위로공연이였다. 우리 몸부림스는 학연이나 지연, 나이에 연연치 않고 사해동포주의를 발휘함은 물론이고 특히 우리와 같은 몸부림의 의지가 있는 여자면 단숨에 같은 몸부림스가 된다. 경주는 물론 교회 친구이긴 하나, 교회 다니는 목적은 다 같을 순 없는 법. 그 친구는 교회는 연애하는 장소로 안다. 결혼하고 나서도 그 버릇 못 버렸다. 미국서 할일 없어 교회 열심히 다니다가 집사 땄는데 다른 집사랑 연애한다. 비록 예배시간에 졸기는 했어도 난 그러진 않는다.

그날, 우리집에서 한정식으로 밥 먹고(여기서 한정식은 밥과 김치가 있는 우리나라 음식을 뜻한다.) 열나게 아이들 잠들기를 기다렸다. 근데 애들은 졸라 잠을 안 잔다. 진짜 머리통 때려서 기절 시키거나, 수면제 있으면 먹이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들은 왜 잠을 안 자는 걸까? 특히, 친구랑 놀러 나가려는 날, 간만에 주말영화라도 한갓지게 볼라치면 죽어라 안 잔다. 웬수가 따로 없다.

경옥이는 시댁에서 저녁을 먹고 온다더니 밤 늦도록 오질 않았다. 기다리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정 못 오겠으면 우리끼리 놀려고 전화를 했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꼭 갈테니 기다리란다. 그래서 얼추 11시가 다 되도록 기다렸다. 경옥이가 그때쯤 왔다. 볼때기는 불그작작 이미 취기가 돌았다. 문에서부터 팔자걸음으로 툴툴거리며 들어온다. 입은 닷 발이나 나왔다. 우찌된 일인가? 오랜만에 놀러 온 며느리 그냥 둘 순 없는 법. 경옥이 시어머님 그 더운 여름 날 아들 딸 손주 다 불러들여 갈비구이를 하셨다. 베렌다에 숯불 피우고 오만 연기 다 들이마시며 비지땀을 흘려가며 두 시간 갈비를 궈 봐라. 진짜 돈다. 열 뻗힌다. 갈비를 다 먹자 이번엔 냉동실에 있는 잡고기 몽땅 끄집어내 다시 양념해서 굽는다. 물론 굽는 건 다 며느리 몫이다. 갈비는 이미 다 먹고 질긴 국거리 고기만 씹다가 홧김에 마신 술로 벌겋게 달아오른 경옥. 들어오면서부터 씩씩댄다.

그러면 공연단은 다 왔는가? 아니다. 한 명 더 있다. 무식한 우리의 수준을 업(up)하기 위해 논술교사인 옥자의 친구를 불렀다. 그녀는 서울대 박사과정 중이고 당시 서울대 강사였다. 이름은 연주다. 우리와는 수준이 맞진 않았지만 몸부림스가 감당하지 못할 인간형이 무에 있겠는가? 몸뚱이 하나로 세상을 사는 우리 아닌가? 그날 우리의 파리(파티의 원어적 발음)에는 엄격한 조건이 있었다. 첫째는 출중한 미모. 둘째는 지적인 소양, 세째는 완벽한 의상(끈 달이 원피스, 빤짝이 원피스...)과 가무에 소질이 있는 녀자들만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그 원칙을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왜??? 선 머슴같은 옥자 때문이다. 그 얘긴 더 이상 안 하겠다. 암튼 다 모여서 자리를 정돈한 시간은 밤 1시였다.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어떡할까?"
"그래도 가자!"

그리하야 그 밤에 그 장대비를 맞으며 우리가 간 곳은 <앗싸, 노래방>이였던가. 어찌나 세차게 비가 오는 지 집에서 50미터 떨어진 노래방에 도착했을 때는 온 몸이 비에 홀딱 다 젖어있었다. 그야말로 육감적인 밤이었다.
가방 속에 맥주를 몰래 사 들고 들어온 경옥이. 여전히 분통을 참지 못하고 계속 마신다. 노래방서 파는 맥주는 다 가짜다. 죽어도 가짜는 못 마신다. 이렇게 우리의 불타는 밤은 시작됐다. 어지간히 알딸딸해진 경옥이의 쇼가 시작되었다. 먼저 다리 들어올리기. 노래를 하면서 중간 중간 다리를 쭉쭉 들어 올린다. 우리도 따라 했다. 하지만 흑흑~~ 굵거든 짧지 마라, 짧거든 휘디마라, 우리의 다리는 쭉쭉 올라가기는커녕 펴지지도 않았다. 요염하게 웃으며 <사랑밖엔 나는 몰라>를 부르면서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고혹적으로 쳐다볼 때는 여자인 나도 앗찔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금이 저린다. 경옥이의 제스쳐를 일일이 다 열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냥 이태원의 밤무대 무희를 상상하라.
근데 그때, 경옥이 소리를 빽 지른다.

"여기 봉 하나 박아."

가보진 않았지만(?) 그런 무대엔 왜 항상 기둥이 있잖은가? 무희들은 그 기둥을 잡고 온갖 포즈를 다 취하더라 만. 경옥이도 맨손체조하다가 뭔지 허전했을 터. 장사 안 되는 노래방 주인들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모니터 옆 쪽에 기둥 하나씩 박아두면 장사가 잘 되리라. 노래방 간파에 써야 한다. <봉 완비>라고. 한 손엔 마이크, 한 손은 기둥 잡고 자신의 감정의 무게를 몽땅 실을 수 있을 테니까. 경옥의 <닐리리 맘보>를 시작으로 두 시간 노래하고 보너스 삼십 분 더 받고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며 놀았다. 이 자리를 빌어 옥자에게 한 마디 하겠다. 옥자야! 너 그런 노래 부르면 다시는 노래방 안 끼워준다. <참새의 하루:송창식>와 <아름다운 강산> 그거 부르지 말아라. 그 노래 5분 넘어간다. 그리고 서울대 강사 연주, 템버린으로 모든 걸 만회 하려하지 마라. 실력으로 해라. 술수는 안 통한다. 몸부림스는 몸으로 승부한다.

다시 집에 와서 뛰는 가슴 진정시키며 차를 마시는데 경옥이가 없어졌다. 얜 가끔 말도 없이 사라진다.(어떨 때는 없어져서 찾아보면 화장실 청소하고 있다.) 아무데도 없어서 한참을 찾았다. 앗! 근데......
세수한다고 수건으로 머리 올리고는 욕조에 들어가서 쭈그리고 쿨쿨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샤워 커튼까지 치고 말이다. 제 버릇 남 못 준다. 하는 수 없이 먼저 재웠다. 날밤을 꼬박 세우며 수다 떨다가 이른 아침 경옥이를 깨웠다. 시댁에서 알면 뭐라 하겠는가? 그렇찮아도 미국서 온 동창(지 친구도 아니면서) 얼굴이라도 본다며 거짓말하고 나왔는데 말도 없이 외박한 셈이니. 얼떨결에 일어난 경옥이 입에선 술 냄새가 진동하고 푸석해진 얼굴이며 흐트러진 머리, 몰골이 난리도 아니다. 겨우 양치질하고 가그린 하고 껌 줘서 보냈다. 나중엔 들은 얘긴데 이젠 죽었다 하고 시댁에 갔는데 마침 시어머니가 조용히 문 열어줘서 아무 일도 없었단다. 하마터면 경옥이 시집에서 ?겨 날 뻔 했다.
미국서 온 경주는 그날 꼬박 밤을 새고 아침 먹고 갔다. 가면서 고백했다. LA아줌마보다 더 잘 논다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엔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다시 오면 또 <앗싸 노래방> 가자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카드에 써서 보낸다. 몸부림스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다.
우린 장대비도, 폭풍우도, 천둥번개도 두렵지 않다. 오롯이 몸뚱이 하나 갖고 살기에 무서울 게 없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그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더 높이높이 날아서 비구름을 뚫고서 구름 위의 그 찬란한 태양을 받으며 나르는 독수리처럼, 그렇게 대차고 옹골차다.
장대비 오는 날.
몸부림스여! 나가자. 세상 속으로!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