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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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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나의 영양제이다.


BY 27kaksi 2003-10-16

어제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을이 깊어가서도 아니고, 나의 사추기의 치기어린 행동도 아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둘째의 문자를 받았다. 잠결 이었다.

졸전 준비하는 선배들과 학교에 있다는거였다. 나는 고루한 엄마 일까?

딸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슨일이 있어도 외박은 하면 안된다는 나의

고정관념은 딸에게 듣기 싫은 잔소리를 수없이 하게된다.

건축이란게 그런것이고,

전공탓으로 계속 남자들과 섞여 살아야 하는 그애에게 난 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건지..........

그앤 참 힘들게 지금의 학교를 선택했고 제나름으로 힘든 시간들과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래도 엄마 눈에는 성숙함이 안보이니.......

남자들은 왜 그리도 따르는지...

가뜩이나 마음 여린 아이가 남자 친구 관리도 잘 못한다. 그렇다고

딱 떨어지는 연애를 하는것도 아니고,....

하여간 자식은 늘 부모에겐 걱정거리인 모양이다.

큰딸은 석사 논문 준비로 계속 밤을 새며 힘들어 하고, 아빤 일이 안풀려

우울증이 온것 같고 아들은 군대를 앞두고 있고.....

난 요즘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다는 선인들의 말은 명언이다.

기억해 보면,

이제까지 걱정이라곤 없었던 생활이었다.

때마다 여행을 하고, 중형차를 몰며, 골프를 치는게 일과였다.

아빤 이른 나이에 출세를 한 잘나가는 남자였고, 세아이는 모두 총명

해서 강남에서도 세명이 모두 반장을 하는 행복한 엄마였다.

물론 치마바람 비슷한 육성회 모임도 했고, 아이들에게는 고르게 특기

교육도 시켰고, 물론 학원도 만만치 않게 보냈고, 과외가 필요하면

그즉시 시켰다. 세아인 무난히 명문 대학에 입학 했다.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큰아인 학교 신문사에서 평생을 같이할 반려자도 만나고, 공부로 진로를

잡아서 지금은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큰애답게 차갑고 이성적이라서 자기의 일에는 똑 떨어진다. 모든것에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이제까진 계획에 조금도 차질이 없이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집안의 어떤일도,
부모나 형제일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고 흔들림이 없다

그성격은 지금 그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장학금으로 학비를 해결하고, 알바해서는 찬찬히 돈도 많이 모았다.

자랑스럽고 대견한 아이다.

내년 봄쯤에 결혼을 시킬 예정이다. 저학년때 첫사랑인 4년 연상의 선배

와 5년째 교제를 하고 있다. 처음에 부모에게 소개해서 허락을 얻어내고

무난히 이제까지 지내고 있다.


둘째딸은 고등학교에서 잠깐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에 소홀하더니,

세번의 입시를 치루는 어려움을 겪어서 힘이들더니 지금은

실내 건축을 전공하고 있다.

그아인 수영에 재능을 보였었다. 그일로 참 힘든 기록의 싸움을 그앤

해야 했다. 초를재는 피말림을 그앤 뛰어넘지 못하고, 서울대, 연대에

쓴 고배의 잔을 마셨다. 온가족의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그때 난 3년쯤은 늙었고, 머리에 흰머리가 생겼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앤 좀 소극적이고 식구들과 ?y이지 못하면서

밖으로 도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늘씬하고 착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있다. 늘 그애에게 마음이 쓰여서

난 울기도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다.

오히려 더 자기일에 충실한지도 모르는데.......

막내 아들은 명문대를 무난히 들어가고는 일학기를 포기하고 영화판에

뛰어들어 영화 제작부에서 일을 했다. 몇달을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집을 떠나 고생을 했는데, 돌아 왔을때는 제법 자란 모습을 보여줘서

F가 죽 뜬 일학기 성적표를 받아 들었을 때도 우리 부부는 괜찮았다.

그애가 하고 싶은 영화일이, 그 기회를 통해 자양분이 되리란걸

믿었었기 때문이고, 일찍 경험하므로 진로를 정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돨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빨갛게 뒤흔들릴때, 아들은 전주의 한 여관에서.

2424라는 별로인 영화를 찍느라 온종일 굶은적도 있다고 했다.

그후론 학교에 돌아가 공부를 열심히 했고 다음주는 (27일) 군대에

간다. 그녀석을 낳고 친정의 온동네에서 기뻐해주던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군대에 나가는 건장한 청년이 된걸 보면 흐믓하다.

좋은 성품으로 자라준게 고맙고, 늘 쉽고 긍정적인 그녀석이 우리에겐

커다란 위로가 된다.

그런데 우리집도 힘든 일들이 찾아왔다. 아마도 절대자인 신은,

우리 가족이 얼마나 방어 능력이 있는지 시험을 하는 모양이다.

금융계에 사정 바람이 불면서 최연소 지점장 이었던 그가 사표를 낸게

벌써 5년,!

사이가 좋은 우리부부는 시간이 많아지자 여행도 참 많이 다녔다. 우리

가정에 새로운 전기가 올거라고 계획도 많이 하고 희망도 가졌다.

그러나 아무 경험없이 순탄하게만 살아왔던 우리에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새로운 직장도 만족하지 못했고,

많은 일들을 시도 하던 그는 이제 지쳐 있다. 이제 지천명의 나이를

맞은, 아직은 젊은 그가 실의에 빠져 있다.더군다나 청년실업이 심각한

현실이고, 경험이 없고보니 창업도 어렵다. 그동안 생활비로 학비로

물론 경제적인 문제도 생겼다.

적지 않은 퇴직금을 받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직장이나 사업

추진비로 없어지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다고, 분양받은 아파트가 문제가 생겼고, 입주에 맞추어

강남의 아파트를 일찍팔았기 때문에 결국 이곳 관악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물론 집도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넓은집이 감사한 일이다.

허나 처음엔 가족이 힘이 들었다. 왼지 가난해진것 같은 생각이들어서..

교통도 편하고, 서로 사랑하는 힘으로 우린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서로의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오빠의 말이 생각이 난다.

\"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예전에 어땠었노라고, 잘나갔노라고 과거에 사는사람이고, 발전이 없는 무능한 사람은 지금 자기의 일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고, 가장 바람직한 사람은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그말을 들으며 나자신이 많이 반성이 됐었다. 아직도 나에게는 얼마나

예전의 기억으로 교만한 마음이 많은지......

우리 부부에게, 아이들은 매일 걱정 말라고 위로를 한다. 지들 셋이

무슨일을 못하겠느냐고..... 물론 아이들은 우리의 자앙분이다.

언제나 새힘을 주는 영양제 역활을 한다. 가족밖에 모르는 엄마에게

용기를 주는 아이들로 인해, 나는 또 남편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내 몫을 잘 감당하련다.

내일도 또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