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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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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못 말려!


BY 김 지은 2003-10-02

지난 월요일 이었다.

요즈음 신경성인가? 하는걸로 나는 " 인후두 역류 질환" 을 앓고 있어서

괜시리 죽을 병이나 걸린것처럼 엄살이 많다.

그런데 이병은  도저히 먹는거나  자는거나 한시도 나를 편케 놓아두질 않는다.

그래서 동네 병원을 다니다  도저히 차도가 없어서  모 대학 부속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아침일찍 시외버스를 타고 동서울에서 딸애와 만나기로 하였다.

아이는 죽전에서 출발을 하였고 나는 강원도 홍천 밑에서 출발 하였다.

도착을 하고 보니 딸애는 아직 미처 도착을 하지 않은듯 했다.

딸애의 남친네 집 근처에 대학 병원이 있어서 그리로 가려고  약속을 했던것이다.

나는 막간을 이용 하여  나의 남친 에게 전화를 했다.

" 아빠!  오늘 여기 병원에 진찰 다 끝나고 나면 얼굴 보여 주실수 있어요?"

진찰 끝나는 시간이 몇시쯤 되느냐고 하셨다.

 나는  점심 시간쯤 될꺼라고 얘기 했다.

 그럼  만날수 있다고 하셔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진찰을 받고 나서 나는 딸애와 어설픈 점심을 먹으려고 분식집엘 들어갔다.

음식을 시키고 앉아 있는데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맛을 모르고 몇숟갈 떴다.

딸애도 마찬 가지 였나 보다.

딸애도  직장을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자기 남친을 자주 못만나서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나는 딸애 에게 말했다."  환이는 지금 어디 있는데?"

 근처에 있다고 그러길래  그럼 대충 일어나서 헤어지자고 그랬다.

딸애는 "  엄마 어디루 새려구 그러지?  어디 갈껀데?"

꼬치꼬치 따지 듯이 묻고 있었다.

나는 원래 딸애 하고 비밀이 없다.

딸애가 26살이나 되었으니 때로는 보호자 노릇을 한다.

"응 엄마 너처럼 남친 만나려구 해"

딸애는 몇 정거장 가서 꼭 내리라는둥 3번 출구는 몇 미터쯤에 있다는둥  완전히

나를 촌뜨기 취급 하며 길잃어 버리지 않게  전철에서 책보고 있지 말라는둥

벼라별   오만  잔소리를 끓여 붓고 나를 놓아 주었다.

나는  내 남친과 약속한  신림 전철역 3번 출구를 보무도 당당히 빠져 나왔다.

 그런데  그 이도  마악 입구에 도착 하는게 아닌가!

나는 빙그레 웃음 지어 보이며 옆자리에 앉았다.

" 많이 아프냐 ? 의사가 무어라고 하드냐?  점심은 먹었냐?

그이는 내게 애기 한테 묻듯 자상하게 묻고 있었다.

그리고 그이는 이내 부드럽게 도심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아빠!  어디로 가실껀데여?'

나는 응석을 부리며 얘기했다.

소래에 가서 회도 먹고 바람도 쏘이다가 오자고 하셨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소래에 도착 하자 우리는 포구 시장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넜다. 이윽고 시장 입구에

다다르자 난데 없이 농민을 도와 주자고 충청도 어디 농협이라며 떠들어 대는 아저씨

가 있었으니 그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는 빨려들듯 어느 점포 안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었다.  고개를 끄덕여 가며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나는 그들의 유도 하는대로 덜컥

커다란 봉투를 받아 들게 되었다.

그 모양을 지켜보시던 그이는 빙긋이 웃으시며  그무거운 봉투를 들고 다녀야 하는

태권브이가 되어야 했다.

나는 언제나 누가 어쩌구 돕자는 소리만 나오면 말려드는 아주 희안한 정서를 가진

부인 하지 못하는 아줌마 였다.

 이윽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오니 세상을 다 얻은듯 했다.

역시  그이의 손에는 내가 아까 유혹 당한 그 무거운 봉투가 들려 있었다.

소래에서 부터 차를 몰아  내가 사는 지역 에들어 오니

아차! 약을 사지않았다. 약국 마다  처방전을 내미는데  한두가지가  없다는소리다

무려 열군데 가까운 약국을 가봤지만 나는 약을 살수가 없었다.

 어쩔수 없이 그이는 내일 당신이 약을 지어서 가져다 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약때문에 내일또 장거리 운전을 하냐고 그냥 쫓아 간다고 하며 냉큼 따라 나섰다.

다시 우리는 차를 몰아  그 대학교 가 있는근처의 약국에서  약을 구할수 있었다.

약사님 왈  "그러게 의약 분업을 대책 없이 만들어 놨다니까요!"

 대책 없다는 소리는 꼭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

약을 짓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그이는 뚝섬에서 머리좀 식히고 쉬었다 가자고 했다

나는 많이 미안 하던 참에 잘됐다 싶어 그러자고 맞장구를 쳤다.

그이는 많이 가보셨겠지만 나는 라이브 카페는 생전 처음 가봤다.

분위기도 좋았고 물위에 떠있는 카페에서 한강을 내다보는 기분도 괜찮았다.

아니  너무너무 행복 했다.

나는 딸애 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있나 한번 맞춰봐.  지금 라이브 카페에서 폼잡고 있다 약오르지?"

 딸은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누구도 대신 할수 없는 울 엄마! 평생 행복 하셨음좋겠습니다사랑해여"

그리구는 하아트를  그려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