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혜씨 이야기
지금 내게 누군가가 소원을 물어 온다면 난 주저없이 잠
한번 푹 자보는것이라고 말할것이다. 오늘로 나흘째 거의
자질 못했다.
수면부족이어설까? 피비린 내 나는 빨래를 박박 빨아
햇볕에 널고 돌아서려는데 머리가 핑 돌고 토할 것같아
빨래를 널던 마당에 벌러덩 누웠다.
바닥에 코가 닿자 기다렸다는 듯 잠신이 깊은 곳으로 끌고
가려는데 난데없이 훼방꾼이 끼어들었다. 승혜씨였다.
아까전 만 해도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지 않았던가?
뒤뚱기어다니는 그녀가 언제 나왔는지 누워 있는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잠을 방해한다.
"왜 그래?" 하니
"목 말라요." 한다 (물 갖다주고)
다시 쿡 해서
"왜?" 하니
"오좀 마려요." (쉬 보게해주고)
다시 쿡
또 다시 쿡 해서
"왜 또?" 하니
그냥요. 하며 씩 웃는다.
승헤씨 - 대뇌 측두엽 부분의 해마의 이상으로 뇌손상을
입어 입원했던 여자. 몇 달전 우리 집에 또 하나의 가족
(우리집에서 함께 사는 환자분들의 지칭) 세명 중 두번째로
온 사람이다.
솜털이 보송한 예쁜손을 가진 삼십을 갓넘은 젊은 여인의
뇌세포의 파괴는 전구에 필라멘트가 끊어져 불이 안들어
오듯 하체의 마비를, 언어장애를, 기억장치를 끊어 놓았다.
가져가려거든 다 가져가던가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 마냥
늘 먹이에 목숨을 거는 동물적 식탐과 움직이기 조차 어려운
다리 사이에 매달린 성욕으로 밤마다 울부짖는 짐승을 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운명의 신이 알았으면...
어젯밤에도 달뜬 몸을 어쩌지 못해 이불에 선명한 핏자욱을
남기며 달걸이 행사를 화려(?)하게 했던 그녀는 아침이 되니
쓰러져 자고 그녀 때문에 한잠도 잘 수없었던 나는 핏자욱을
지우느라 한나절을 낑낑댓건만 마당까지도 쳐들어와 휴식을
휘저어 놓는 이순간 그녀는 미운오리 새끼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야지 싶어 미운 오리 새끼의 방해는 걍
무시하기로 했다. 다행히 마당의 맨바닥에 누운게 아니라
일광욕을 하기위해 돗자리위에 널어 놓은 이불위에 누웠다.
도톰한 요위로 따끈히 전해오는 땅의 열기와 코끝으로 전해
오는 바람의 내음, 끝간데 없이 넓은 가을 하늘을 지붕삼아
누운 여기가 무릉도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모든 것이 정지된 것같은 고요함속을 고추잠자리가 이따금씩
휘젖고 잦은 날개를 저어쌋던 몇마리의 잠자리가 날아간
하늘위에 아이스크림을 뭉게 논 것 같은 흰 구름이 걸려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때문이까? 짖궂게 장난치던 승혜씨는 언제
잠들었는지 내 무릎을 가로질러 웅크려 자고 있고, 마당
바로 앞거실에서는 인이 할매와 옥이 할매의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