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난 정말 뻔뻔하고 좋게 말하면 당당한 아이였다.
1남1녀에 자식 욕심이 남달랐던 부모님은 남매가 뭐든지 최고가 되길 바라셨지만 울남매는 최고는 커녕 보통에도 못미치는 그런 아이들이였다. 맨날 사고 치고 댕기고, 동네 애들하고 쌈박질하다 흠씬 두들겨 맞고 들어오기 일쑤였던 덜떨어진 아이들... 물론 학교 성적 또한 부모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곤 했다.
그래도 난 참 뻔뻔했다. 엄마한테 무지하게 맞아가면서도 죽어라 공부는 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놀러다닐 생각만했다. 것도 아니면 방구석에 쳐박혀 해가 지건 말건 책을 읽곤했는대 그래선지 말은 또 엄청 잘해서 머리가 크고부터는 울엄마 나랑 말싸움에서 이길 재간이 없으셨다.
내보이기에도 창피한 성적표를 가지고서도 에라이 몇대 맞으면 끝나겠지 생각하며 불쑥 내밀던 나! 엄마가 미련 곰탱이니 뭐니 욕을 바가지로 할라치면 `이게 다 엄마 머리 닮아서야`
능청을 떨며 엄마 속을 뒤집고, 것도 아니면 `내가 공부는 못해도 머리까지 나쁜건 아냐`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엄마의 매질에 맷집도 좋게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그 매를 다 맞곤 했다.
고등학교 들어가 갑자기 내 앞날에 위기를 느껴 열심히 공부하고, 물심양면 과외 시켜주는 엄마덕에 성적이 올랐지만 우쩐일인지 고딩3학년 이학기 그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삐딱선을 타면서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반항에 찬 말한마디로 모든 공부에 등을 돌리고 시험 백일 앞두고 백일주 마신다며 곤드래가 되면서 뒤늦은 탈선(?)의 길로 들어섰다.
결국 대학에 보기좋게 떨어지고 재수하라고 난리치는 부모님의 말에 콧방귀 한번 휑~하고 뀌어버리고는 포부도 당당하게 사회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첫월급을 탄 날 기분좋게 부모님 선물 사들고 월급 봉투와 함께 집에 들어섰던 난 눈앞에 별이 번쩍할만큼 머리카락이 뭉탱이로 빠질만큼 아빠한테 어마어마한 싸대기 한대를 맞으며 그 자리에 푹 쓰러졌고, 그날 이후로 부모님과 나 사인 돌이킬 수 없게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고, 동생 말을 빌어 난 우리집안의 화근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난 당당하게 내 식대로 살았다. 그시절 내 삶 자체가 하나의 전투였다고 할만큼 계속 공부하길 바라시는 부모님과 끝없이 싸워가며 또 녹록치 않은 세상과 싸워가며 부딪쳐서 깨어져서 피가 나기전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알 수 없단 좌우명으로 열심히 내식의 삶을 고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내 또래들이 졸업할 무렵 IMF가 덮쳤다. 그때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내 또래 친구들은 취직이 되지 않아 동동거리고 있을때 그나마 난 일찌감치 기반을 잡고 그 어려운 시절에도 적지 않은 월급 받아가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때사 부모님이 날 인정하셨다. 그렇게 속썩이던 넘이 드뎌 뭔가 해내었구나 대학 못들어간 자식땜에 창피해서 친구들도 못만났던 우리 엄마는 그때사 어깨를 펴셨다.
엄마! 두고봐요. 내가 지금 대학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나중에 웃는 놈이 누군지 보여주고 말겠어요. 대학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나 쟤네들보다 성공할 자신 있다구요.
그렇게 외쳤던 내가 드디어 부모님한테 나도 뭔가 할 수 있단걸 보여주었던 것이다.
결혼 또한 그렇게 내 고집대로 너무나 평범한 사람과 했다. 그때도 말했다.
두고보라고. 회사 사장이랑 결혼한 누구보다 잘 살 자신 있다고....
그러나...난 갑작스래 닥쳐온 시련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불도저처럼 밀어붙히던 그 패기도 그 용기도 사라지고 한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며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하루에도 죽음을 몇번씩 생각할만큼 아침에 눈뜨는것이 두려울만큼... 그렇게 벗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점점 절망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렇게..그렇게...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는데...
어느날이였다. 명절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어린 시절 얘기가 나왔다. 엄마가 우리 남편한테 내가 어려서 얼마나 고집이 샜는지 얼마나 뻔뻔하고, 세상 무서운게 없던 아이였는지 열띤 음성으로 한참 말씀을 하시는 중이였다. 자리에 같이 있던 나를 아는 친척들도 내가 어려서 저질렀던 장난이며 싸우다 사촌 녀석한테 돌을 던져 머리통을 깨놓은 얘기까지 신나게 하시며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었을때였다.
갑자기 나의 어린시절 아니 불과 몇년전의 내 모습이 떠오르며 무언가 머리를 한대 쾅 얻어맞은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그래 그랬었지. 내가 그런 얘였었지. 그런데 지금은 뭐야? 뭐하고 있는거야?
집에 돌아와 한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결혼전 앨범을 꺼내 보았다. 어느 사진하나 얌전히 하고 찍은것이 없는 사진속의 나! 바닷가 모래 사장에 `이세상은 내꺼야!` 앞에 서놓고 두팔을 벌리고 찍은 사진들...
그 당당함이 뻔뻔하리만큼 당당했던 내모습이 거기 있었다. 사진속의 나는 지금의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야!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아는거야. 두고봐! 두고보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