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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될꼬 하니(여포가 되고 싶다)


BY 하얀 조가비 2003-08-10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


어제 친구들과의 대담중에 이 질문이 나왔다


흔쾌히 내가 읽었다고 했다


삼국지 책 을 처음 본 건 중 1때였다


친정아버님이 소장하고 계신 책이었는데


지금처럼 양장본이 아니고 전 5권으로 된 아주 오래 묵은 책 이었다


군데 군데 좀 이 슬은 흔적들이 있고. 누렇게 바래지고, 활자가


세로줄로 쓰여진 그 책에서는 갓 찍혀나온 인쇄냄새 대신


시큼한 세월 냄새가 묻혀나는 케케묵은 책이었다


무엇이든 읽을것에 항상 굶주렸던 내 눈에 띄인 그 책은


몆 밤을 독식하며 굶주린 내 독서 양 을 채우기엔 아주 그만이었다


중 일 짜리 여학생에겐 다소 버거운 책인건 사실이었지만


넓은 중국 중원을 배경으로 유비,관우,장비,를 비롯한


난세의 영웅들의 활거는 내게 얼마나 충격적으로 닥아왔던지


기껏해야 김부식의 삼국사기 정도만 알고있던 내게


중국땅은 그때 부터 신비의 땅이고 꿈에 땅이 되었다


아마 그때 부터 중국영화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특히 사극을 좋아하는데 삼국지 영향이 매우 컸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삼국지 5권을 다 읽고도 심심하면 또 읽어보곤 했다.


무려 5,6번 읽었지 싶다


어제 만남에서 삼국지 얘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삼국지를 읽어봤냐고 물었던 친구는 싱겁게도


'그 책에 나오는 사람중에서 어떤 인물이 되고 싶냐'고


되물었다
하도 방대한 역사고전이라 나오는 등장인물도 상상을 초월


할 만큼 많은데 읽으면서 반 한 인물들이 하나 둘 이었던가


관우, 조자룡,유현덕,조조군의 사령탑이던 하후돈,여포,


단순하지만 우직한 장비,그리고 너무나 잘아는 제갈공명,


원소, 등 등 인물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으니 이사람이다


하고 꼭 집어내기가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되고 싶은 인물은 젊은 시절 동탁 아래 있던


여포였다.


그는 삼국지를 보면 매우 잘생긴 사람이었고 훌륭한 전사이기도


했고 의리도 있었던것으로 묘사 되어있다


관운장하면 붉은 긴 수염과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를 연상하는데


원래 적토마는 여포가 타던 말이었다


간사하고 간교하기는 조조 못지 않지만 여포의 청년시절을


들여다보면 배포도 있고 야망도 큰 그런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동탁의 애첩 '초선'과 의 사랑은 차라리 우직해서


바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로 그 초선과의 사랑에서 보여주는 여포의 고뇌와


사랑앞에서 천하 영웅도 별수없이 가슴아파 하는 모습이


나에게 무척 인상깊은 구절이었다


모시는 상관의 애첩이니 감히 넘겨다 볼수없는 상대에게로


향한 열정이 결국 모사가들에 의해 모시던 주군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되지만 어찌 보면 미인계에 빠진 결과가


되었지만 초선에게 향한 여포의 가슴앓이가 한창 사춘기였던


내게 장수로서의 여포보다 더 깊게 닥아온건 사실이었다


갑옷속 여포 보다 한 여인을 사랑하는 청년 여포란 인물에


흥미가 있었으므로 차라리 그 인물이 한번 되어봤으면


했더니 모두 의외라는 표정들이다


삼국지를 읽은 친구가 서너명 되었는데 전부 제갈량이나


관우 같은 인물을 선호한데 반해


내가 여포라고 했으니 퍽 놀란 눈들이다


하지만 읽고 느끼는 감정들은 모두가 다르니 이것도

 

내 개성일수 있고 어쩌면 나 의 편향적인 성격 탓 일수도 있다


일일극이나 주말극에서도 빛나는 주연보다 감초 역활을 하는


조연스타들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그들의 연기 때문에 사실 주연의 연기가 살아나기 때문에


연륜 쌓인 조연들의 연기를 나 는 더 값있게 쳐준다


임현식 같은 분 이 바로 그런 연기자인데


나이로 보나 연륜을 보나 주연급 대우를 받을 연배지만


새파란 주연급들 보다 등급은 낮은 대우를 받는 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어설픈 광대의 몸짓도 아니고


일부러 억지춘향으로 보여주는 연기 또한 아니다


너무나 자연스레 우리 이웃처럼 너스레를 떨고 , 감동을 주며


눈물나는 연기에선 가슴을 푹푹 젖게 하고 , 웃음을 줘야 하는


대목에선 뱃살이 아프도록 웃게한다


진정한 광대란 바로 그런 카타르시스를


우리에게 줄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그가 주연이 아님에도 임현식이란 연기자를


퍽 좋아하고 그 가 나오는 연속극은 빠뜨리지 않고


볼려고 한다


임현식 과 여포


시대가 다르고 역활 또한 다르고 성품 또한 다르지만


우직하게 , 앞만보고 주어진 역활에 만족하며


주연을 빛나게 ,돋보이게, 하는 감초역활 만큼은


두사람 다 완벽하게 잘 해냈다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싶다


어제 친구의 물음에 잠시 혼란했지만 곧바로


'여포' 라 고 말할수 있었던건 순전히 나만의 이런 생각때문에


곧바로 여포란 대답을 줄수있었던게 아니었을까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이며


조연 또 한 나 다


그러니 내 삶에서의 닮고 싶은 부분도, 버리고 싶은 부분도


잊고 싶은 부분도, 모두 내가 만든 유무형의 틀이므로


지우고, 버리고, 보듬고, 안고 ,가는건


나의 영원한 숙제일수 밖에 없다

무엇이 될꼬 하니


뿌리깊은 나무나 되고 싶다고 할까나


아님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진짜 '여포' 나 되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