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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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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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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리


BY 선물 2003-07-23

약 10년전 쯤의 일이다.
내가 이 곳 일산으로 이사오기 전에 살던 동네에서도 성당 반모임은 한달에 한 번씩 꼭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마 개신교의 구역모임과 비슷한 성질의 모임이리라.
위로는 70대 할머니부터 갓 서른이 된 나까지 7~8명이 항상 반모임에 나왔는데 나보다 인생경험이 많으신 분들과의 대화가
서로 나이도 잊게 하고 그리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었다.
한결같이 소녀같기만 하신 인생의 선배님들은 그러나 삶의 고단함을 한창 겪고 계시기도 했었다.
그 때 중학교 딸을 둔 사십 중반의 형님(성당에서는 손위 분을 가깝게 형님이라고 부른다.)께서는
한창 사춘기인 둘째 딸과의 어려움을 토로하곤 하셨다.
세상이 너무 밝고 늘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던 그 분에게 딸아이의 사춘기는 일종의 십자가와 같은 고통이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아직 엄마말에 고집은 좀 부리긴 해도 반항할 줄은 모르는 어린 나이의 아이들을 둔 나로서는 선뜻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사춘기는 자연스레 지나갈 것이고 결손가정이나 특별히 문제가 있는 가정이 아닌한 그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을텐데
왜 저토록 밝은 분이 저리도 먹먹한 가슴으로 어두운 얼굴을 하실까 의아한 맘이었다.
그러나 십년이 지나 내 딸아이가 이제 사춘기로 접어들고 보니 자식 둔 사람이 왜 큰소리쳐서는 안되는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그 때 내가 그 형님을 보고 답답한 맘을 가졌던 것이 얼마나 멋모르고 먹었던 교만한 맘이었는지를 지금에야 알게된 것이다.
아이는 언제인가부터 엄마를 무시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엄마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모습에서 어긋나고 있는 아이에게 결코 관대해질 수 없었고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는 것에는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단정치 못한 옷차림에는 모진말로 상처를 주었고 그럼에도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기어이 고집스레 하고야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때 아이는 엄마도 한 번 뚫지 않은 귀까지 뚫었고 반곱슬머리를 매직스트레이트까지 하고서야 중학교 입학식엘 가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어른을 모시고 사는 나는 위로,아래로 다 마음이 쓰여 어렵기가 그지 없었고 내 뜻대로 안되는 아이에게 정말 미움의 감정을 갖기도 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된 뒤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져서 아예 아이는 엄마가 싫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다.
나는 아이의 말에도 상처를 받는다.
이젠 시부모님보다도 딸아이에게서 더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너무 우물안 개구리처럼 바깥세상을 잘 모르는 엄마였고 시부모님과 한 편에 서서 아이를 바라보다보니
아이에게는 가장 편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그런 푸근한 모정을 가진 엄마가 아니었던 것이다.
신문을 보거나 텔레비젼을 보아도 그건 저쪽 세상의 어떤 일이거니하고 생각했지,나의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참으로 태평하고 치열하지 못한 감정을 가진 답답한 엄마였을 뿐이었다.
최근 학부모 모임에 몇 번 나가보니 의외로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존중해주고 있었다.
이젠 나도 긍정적인 운동으로 알고 있는 재즈댄스도 아이가 처음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이상한 눈빛으로 아이를 겉멋든 생각없는 사람으로 단정해서 반대했었고 아이는다른 아이들 엄마보다 늘 고리타분하고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는 엄마에게 조금씩 담을 쌓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항상 존중하고 그 아이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내 이성과는 달리 내 표현은 자꾸만 조급증을 갖고 아이를 힘들게 하게 된다.
어느날 신발정리를 하다가 아이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던 중 갑자기 나는 아이에게 애정표현을 하고 싶어졌다.
늘 너때문에 엄마는 우울해라는 표정만 보였던 것 같아 마음이 걸려서 `실은 너때문에 행복할때가 더 많아\'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이는 또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시키는 것일거라고 지레 짐작했는지 대답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순간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각본대로라면 다정한 말로 딸아이에게 애정표현을 하면 아이도 행복해하며 살갑게 다가와서 좋은 그림을 그렸어야 했는데
또 저 아이는 엄마맘도 몰라주고 제 멋대로이구나하는 생각에 약이 바짝 올라서 한참 나중에야 대답하며 나온 아이에게
\"귀가 먹었니?지금 나오긴 왜 나오니?그냥 방에 처박혀 있지!\"하며 모진 소릴 내뱉고 말았다.
아이는 역시 엄마가 저렇지하는 표정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나는 따라 들어가서 뒤통수라도 한 대 때려야 맘이 풀릴 것 같은데 그저 기가 막혀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이런 엇갈림이라니...
괜히 좋은 맘 먹었다가 오히려 속만 뒤틀린 나는 심란스러워졌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문제는 아이가 아닌 엄마에게 있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텔레비젼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모습으로 평화롭게 보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인 나는 늘 내 기분에 따라
그 모습을 그냥 두고 지켜보기도 하고 또 있는대로 짜증내며 아이를 공부하라고 방으로 몰아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는 똑같은 상황에 백팔십도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일관성 없는엄마에게 아무런 존경심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러면서 내 부모님을 생각해본다.
나는 거저 자란 것만 같았다.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기만 하셨을 뿐 나스스로는 마치 시루의 콩나물처럼 물만 주면 알아서 쑥쑥 자란 것만 같았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나또한 부모님께는 지금 내 아이와 똑같이 말 안 듣는 아이였었다.
그래도 내 엄마는 책값에 돈을 더 붙여 말해도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돈을 건네 주셨고 책상에서 공부해야할 책 밑에 다른 소설책을 펼쳐놓고 몰래 몰래 보고 있었어도 한 번도 의심내며 그것을 들추어 야단치시지 않으셨다.
나는 내가 그저 큰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신뢰라는 넉넉한 자양분을 먹고 자라난 것이다.
그렇게 자란 나는 지금 책상앞에 앉아 있는 아이의 책밑에 깔린 낙서하다만 종이를 들추어 내서 혼내고
책 뒤에 있는 정가표보고 확인하는 의심많고 까다로운 엄마가 되어 있으니 아마도 나스스로 알고 있는 죄가 너무 많은 것이 탈인가보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고대 어디에선가 발견된 기록 중에는 `요즘 아이들은...\'으로 시작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 오랜 옛날부터 어른은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세대차이에 인한 걱정을 해 왔던 것이다.
누군가 부모자리는 자식을 기다리는 자리라고 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겪어야할 과정들을 나는 크게 잘못되지 않는 선에서는 인내를 갖고 지켜보며 기다려 주어야 하는 부모자리에 서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보호자\'이지 절대 권력을 가진 `지배자\'는 아니어야 한다.
왜 부모 교육이 필요한 것인지를 절감하고 있는 하루하루이다.
아이에게 명령하지 말고 조언을 해야 하며 아이를 자주 안아주어야 하며 늘 품어주어야 하는 이 엄마는
알면서도 순식간에 감정대로 해 버리고 마는 아이와 같은 철부지 사춘기 엄마일 뿐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