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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BY 잔다르크 2003-07-16

진밭골로 가는 길엔
장마 비로 힘찬 물소리가
먼저 마중을 한다.

잠시 마음만 돌리면
언제나 마주할 수 있는 자연이
바로 지척에 있는 축복 받은 나라...

꼬불꼬불 녹음이 흐드러진
숲 속을 한참 달려
길이 끝나는 주차장에 차를 댄다.

차단된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후후
폐 깊숙한 곳으로 신선한 산소를 밀어 넣는다.

산과 적당한 거리를 둔 삼계탕 집 마루는
오랫만에 마주하는 기분 좋은 시야로
진작부터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한다.

티격태격 알콩달콩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그 말이 그 말...
숙제한다고 어젯밤을 꼬박 샜다는 딸이 그단새 단잠에 빠져든다.

느긋하니 기다리기에 지겹지 않고
재촉하는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곳에다 집 한 채 마련해 살면 얼마나 좋을꼬?"

같은 음식이라도 먹는 장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했으렷다.
얌전한 모양새로 우리 앞에 나타난 복 땜 닭에
맑은 공기를 곁들여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퀴퀴한 냄새로 발길을 사로잡는 토끼장 앞으로 몰려가
쇠창살 사이로 입을 쏙 내밀며 먹이를 보채는 점박이에게
딸과 번갈아 시들시들한 남새를 들이민다.

정적을 깨는 까치무리가 쉴새없이 하늘은 배회하고
누른 암소 한 마리가 풀밭을 어슬렁거린다.
아, 느림의 미학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