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이건 필요 없어"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셔츠를 수거함 속에 던져 넣는다.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진 이 오래된 화장대도 지긋지긋 해"라고 말하며 치워 버린다. 낡고 쓸모없는 것들을 치우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새로운 것들을 위해 길을 터주는 것이다(중략) 이렇듯 뒤져서 버리고 싶은 충동이 당신을 사로잡을 때면 마음 속에서는 두 가지 상반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옛날의 나는 눈물을 흘리며 떠나고, 새로운 나는 축제 기분에 들떠 강해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긴장과 이완이 공존한다.
요즘 읽는 책에서 어제 이런 귀절을 만났다.
나는 권태와 지루함으로 숨 막여 안절부절 못할 때 언제부터인지 이 구석 저 구석을 뒤져서 무엇인가 버리는 습성이 있다.
어떤 때는 옷장을 뒤적여서 작아진 옷, 낡은 옷을 몽땅 수거함에 넣는다. 그래서 옷장에 옷이 별로 없다. 결혼을 하니 내 것 뿐만 아니라 버리지 말라 한 남편 옷도 '입지 않으면서 뭘!' 하며 슬금슬금 가져다 버린다.^^
어떤 때는 주방을 정리한답시고 그릇을 가져다 버린다. 낡은 프라스틱 그릇을 특히 잘 버린다. 얼마 전 선물 받은 밀폐용기 세트를 구석에 놓아두었다가 어느 날 손때 묻은 프라스틱 그릇 몽땅 가져다 버리고 새 것으로 교체했다. 어머니의 낡은 유리그릇과 스탠 그릇도 슬금슬금 가져다 버렸다. 그러니 수납장이 훨씬 넓어지고 그 안에 시원한 공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결혼 전에는 책을 많이 버렸다. 이사할 때 귀찮다는 핑계로 한 상자씩 헌책방에 팔아 먹었다. 그러데 어느 날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집에서 좀 떨어진 도서관에 한 상자 가져다 주었더니 너무 반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심하면 한 아름씩 가져다 준 결과, 이제 5단짜리 책꽂이를 겨우 채울 정도의 분량이 남았다. 그것도 부담스러워 버리고 싶은데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왠지 더 버리고 나면 거지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옷들. 그릇들. 그중에는 요긴한 것도 있지만 더러 불필요한 것도 요행히(!) 남아있다. 언젠가 나는 또 불현듯 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것들을 추려서 버릴지도 모른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직도 남아 있는 책들이다. 살아온 궤적을 보여주는 책들. 그 책이 나를 괴롭힌다. 한 번도 보지 않은 책도 있다. 앞으로 다시 펼쳐 볼 일이 없을 듯 싶은 두툼한 사전도 세 권이나 있다. 한 번 쓰윽~~ 눈으로 훑어보고 읽지 않은 소설 몇 권 등등. 언젠간 몽땅 버리리라, 다짐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책들이 혼자 집에 있는 나를 고문한다.
그런데 나는 낡은 것들을 버리면서 "옛날의 나는 눈물을 흘리며 떠나고, 새로운 나는 축제 기분에 들떠 강해"졌던 가. 모르겠다. 처음에 읽을 때는 이 귀절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는데 이 글을 써내려오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
기운없이 무력하게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느라 어느 정도의 활기를 되찾기는 했던 것 같다. 축제까지는 아니고.
글을 마치려 하니 옛것의 정취와 손때 묻은 물건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나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집 안에 불필요한 물건이 많으면 숨이 막히는 체질이다. 내게 꼭 필요한 물건만 남겨두고 싶다. 낡은 것이라도 필요한 것이면 버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