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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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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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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하다


BY 27kaksi 2003-09-22

명절이면 늘 시댁으로 갔고,
멀다는 핑계로, 딸이라는 구실을 달아 아버님 산소에 성묘를 가는일도
잘 안하던 난,
이번에 대전 막내오빠의 생신 때문에 내려 가면서 오랫만에 산소에
가게 되었다.
선산에 묻히셨고 늘 누군가 관리를 해주어서 오빠도 성묘만 하셨다
는데, 올해는 아무도 와보지 않았던지 풀이 한자이상씩 자라있고
다래넝쿨이랑 함께 섞여서 그야말로 산소를 분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조카둘과 오빠와 언니와 모두 풀을 베고 치우고.......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었다. 땀은 비오듯 흐르고, 처음으로 해보는
낫질은 손을 벨것 같아 엉금엉금 더디고,
서툴기 때문에 발을 다칠 수도,있다는 주의사항을 지키느라, 엉거주춤
하고 두개의 묘를 형태를 갖추게 만들자,
모두 "어휴~ 어휴~ 헉 헉,"
새삼 농부들의 노고를 생각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산을 지키며 벌초를 해주시던 어른이 돌아 가셨댄다
조카들이 미리 알아서 일을 해결 해야 했는데 아마도 이번 명절에는
성묘를 안온 모양이었다.
장손인 조카 재영이랑 재일이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연휴도 길었는데, 안 다녀갔구나 싶어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조상을 잘 섬긴다는게 어려운일이라지만, 오빠가 돌아가시면 선산이
있으면 뭘하나 조카녀석들은 잘 찾아오지도 않을걸......
그는 결혼하고 세번째의 성묘라니, 정말 나는 살아계실때나 가신후나
불효녀 라는게 확실하다.
그래도 시어른 산소는 명절이나 한식때에 꼭 갔었으니 딸은 출가외인
이란게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빠네서 준비해온 술을 따르고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는 손녀딸 같은 날 퍽이나 애지중지 했더랬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도 풀을 베고 단장을 해드리고, 어머니 산소에
성묘를 하고 돌아왔다.
정말 오랫만에 작게나마 딸 노릇을 한것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와난 우리 애들에게, 오래전부터
우리가 죽으면 화장을 해달라고 유언을 했다.
늘 생각 하는것이지만, 바쁜생활에 산소에 가는 부담감이 클테고,대를
이어 잘 찾아다닐거라는 보장도 없고,.....
납골당 같은데 놓는것도 하지말고 재를 어디에나 뿌려버리라고 말했다
화장 문화는 원래가 불교식이지만, 우린 기독교라도, 그와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시댁도 세형제지만 돌아가시고 몇년만 같이 다녔지 지금은 각자가
자기네들 좋은 시간에 다닌다.
그렇게라도 조상을 섬기고 기억하는것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살아있을
때, 잘해드리고 죽고나면 흔적을 없애는게 여러가지로 좋을것같다.

우리는 산동안 애들에게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면 산소를 만들지 않아도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나같은 딸이어서 후회하며 뒤늦게 반성하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땀을 흘리며 산소에 풀을 베며 우리의 유언은 현명한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 산소에 손을 대보고 어머니 산소에 무릎을 꿇어본다.
인자했던 두분의 모습에 눈시울이 젖어온다.
부모님이 걱정하고 안쓰러워 하던 쉰둥이딸인 난,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왔는가!반성을 하며,....
남은동안의 나의 삶은, 이제까지 살아온것 보다 더 잘살아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