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국민학교였지....
국민학교 시절의 나는
동그랗고 큰 눈을 하고 늘 반에서 제일 뒷자리를
차지하였고, 갓 입학할때부터 가슴에 다는 코수건을
몹시도 창피하게 느끼던 아이였다.
위로 오빠하나를 둔 오남매의 맞딸인 나는
학교가 파하면 가방을 내던짐과 동시에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니며
봄이면 나물 뜯으러 다니기에 바빴고.....
어쩌다 엄마가 집을 비우는 일이 있을 땐
어김없이 집 옆 샘물에서 양쪽 어깨에 한 양동이씩
철철 넘치는 물을 길어다 소죽을 끓이는 일을 도울 수
있을 만큼 언제나 기운이 펄펄 넘치는 아이였다.
수업시간이외에는 별로 공부를 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건 .....
선생님 말씀이라면 꺼뻑 죽는
요즈음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그런 아이였던 것 같다.
그때의 내 눈에 비친 선생님은.....
화장실도 가지 않고.... 이슬만 먹고 사는 듯.....
마냥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생기던 시절이었다.
수업시간에 집중 하나는 참 잘하면서도
수업만 끝나면 공부엔 별 관심이 없던 아이....
그러면서도 늘 나머지 공부하는 아이들을
친구삼아 가르쳐 주기 좋아하던 아이....
여자아이이면서도 늘 골목대장처럼 머슴아들과 맞서서
계집아이들을 끌고 다니던 나는 그런 아이였다.
살이 뽀얗고 발그스레 익은 복숭아를 먹을 때면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그 당시 유난히 산수를 어려워하던 영순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나는 늘 그아이가 안스럽고
너무도 여리게 보여져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잘 해주고 싶어 했다.
공부는 잘하지 못해도 눈이 맑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란 걸
그때의 나는 알수 있었기에......
늘 방과후면 영순이의 공부를 봐 주던 나는
영순이네 집 뒤뜰에 주렁 주렁 매달려 있던
그 탐스러운 복숭아의 맛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산다.
그 집 엄마가 애지 중지 늘 아끼시며 손님이
오시면 내어놓곤 하였던 그 복숭아였건만
내 친구 영순이는 엄마 몰래 후한 인심으로
늘 집에 돌아가는 나의 가방속에다 복숭아 몇 개를
선뜻 따다 넣어 주곤 했다.
그 맛이 너무도 달콤하여 나는 영순이가 같이 공부하자고 하면
그유혹을 한번도 뿌리치질 못했던 것 같다.
그 집 엄마 몰래 먹는 복숭아의 맛이라 그랬을까....
아마도 내 친구가 내게 준 고마움의 표현이라 그랬을 것이다.
오남매중 딸은 하나뿐인 막내딸이라 그런지
영순이는 늘 엄마의 각별한 정을 받고 자랐던 것 같다.
아침마다 학교에 가자고 들르면
영순이네 엄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밥솥위에 얹어 찐
찐빵 두개를 내미셨다.
그 땐 아주 별식이나 되는 양
우리의 주요 간식거리였던
막걸리 넣어 만든 빵속에
단팥 앙꼬가 통통하게 속을 채운 찐빵이었다.
우리 둘은 김이 모락 모락 나는 그 찐빵을 먹어가며
등교길엔 늘 오순 도순 재미나게 학교로 가곤 했었다.
4학년이 끝나갈 무렵 교육열이 높으신 아버지덕에
내가 대전으로 전학을 오게 되면서
그 아이와 난 우리들의 의지와는 상관도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어쩌다 그 애와 난 오랜 인연으로 남지 못하고
저마다 다른 곳에서 성장하게 되었지만.....
책가방도 흔하지 않던 시절
허리춤에 책보퉁이 메고 다니던 두메산골의
빛바랜 사진 같은 유년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로 하여금 정겨운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살면서 힘들었던 기억들을 모두 기억하고 산다면
아마 머리가 아파서 살 수 없지 싶다.
어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이 지치고 고달퍼 질 때
이런 시간여행은 나의 마음을 많이 어루만져 주곤 한다.
한번 가면 두번 다시 오지 않는 생에서의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들 ......
그런것들이 때론 절망속에 빠질수도 있는 우리들을
구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일들은 오래 기억해 두고.....
좋지 않은 일들은 멀찌감치 보내버릴 줄 아는.....
그런 감정의 조절이 잘 되는 사람은
어쩌면 좀 단순해 보이긴 해도
힘든 세상을 잘 건녀는 법을 알 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언젠가 TV에서 연예인들이 그리운이들을 찾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의 내가 만약 연예인이 되어 있다면
가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랬다면 그 영순이를 다시 만날 수도 있었을까?
어느 하늘 아래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영순이가 오늘따라 많이 보고 싶다.
복숭아를 먹는 계절에는 늘 그래왔듯이
나는 오늘도 그 아이가 내게 남겨준
향긋한 복숭아 맛을 혀 끝으로 음미해 본다.
그 시절 이후론 한번도 맛보지 못한 그 맛을.....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은 그 아이가
참 많이 보고 싶은 오늘의 나는
기억속의 앨범을 가만히 열어 본다.
보고 싶다.... 영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