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임시공휴일 어느 날이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61

여인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남자를 남자로 만듭니다.


BY allbaro 2001-08-20

여인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남자를 남자로 만듭니다.

정말 일요일다운 일요일을 보내었다는 포만감이 가슴언저리
에 가볍게 내려 앉습니다. 초겨울이 저울에 잰것같이 똑같은
무게의 낮설음으로 덜여민 옷깃의 틈새로 불어 들어올 때,
조금 쌀쌀한 거리를 걸어 바깥의 불안정한 대기와 차단된,
그러니까 온기과 찬바람을 막는, 벽의 안쪽에 들어선 안도와
따듯한 기운이, 손끝에서부터 번져오는 안락함의 내음 커피
향기가 빈 공간에서 하루종일 주인을 기다리는, 충실하고 친
근한 그런 작은 기쁨과 같은 사이즈의 일요일이었습니다. 아
마도 도심의 오늘은, 압력밥솥 속의 대기와 별반 차이가 없
었을테지만,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상수리 나무가 그늘을
짙게 드리운 숲 그늘 아래에는, 서늘한 바람이 한결같이 고
집스럽게 머무릅니다.

얼음 몇 쪽이 부빙처럼 떠있는 콩국에, 방금 삶아내고 지하
180미터의 암반수로 샤워까지 마쳐서, 윤기가 흐르면서 통통
하게 살이오른 면발을 넣고 굵은 소금을 한 줌넣었습니다.
몇 젓가락으로 금새 포만감이 들었고, 성급하게 다가온 짧은
마지막엔 시원한 국물을 들이켰습니다. 몸의 열이 주우욱!
물러가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온도가, 새삼 상큼하게 느껴
집니다. 다시 블루마운틴과 헤이즐넛을 섞어 고운색의 커피
를 Drip합니다. 탁 트인 서식지의 공간에 매미소리와 커피향
기가 느린 춤을 추듯이 어우러집니다. 손에 든 책을 덮고,
한 손에 커피를, 또 다른 한손엔 시간을 놓아둡니다. 온몸
구석구석 단하나의 긴장도 남겨두지 않고, 완전 방만의 순간
이 가을 향기를 내는 대기중에 떠돕니다. 두 손을 의자 아
래, 정박중인 배의 닻처럼 늘어뜨리고,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시간속으로 들어갑니다. 시계속의 시침이 움직이는 것
처럼, 느린 심장의 박동입니다. 잠시 고추잠자리가 목언저리
를 지나 선회비행을 하며 종아리 사이로 지납니다. 나는 또
다른 무생물중의 하나가 되어, 한동안 인간이라는 생물의 굴
레를 벗어나게 되었나 봅니다. 아니면 잠자리들의 초보 조종
사 훈련일지엔 나=식물로 분류되어 버렸겠지요.

PRADA의 02 fall & winter 컬렉션을 그저 아름다움에 대한
또 다른 탐구와 기준점이 필요한 시력교정으로, 무관하게 떠
오르는 화면을 54Cm의 간격너머에서, 은행에서 대기순번을
기다리며 넘기는 잡지의, 필승 다이어트 감량전, 감량후의
광고 페이지처럼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아마 나자신
의 눈동자가 조금 커져 버렸을 것이 틀림없을, 길고 손질이
잘된, 인공적인 바람에 조금 날리우며 Blue Black으로 윤이
나는, 영혼을 부드럽게 감싸안아 줄 것만 같은 멋진 생머리
를 발견하였습니다. 세련되게 날카로운 각이진 U자 형태의,
어깨와 가슴이 많이 드러나는 Black 셔츠와, Coral 고동색의
허리선이 잘 드러나고, 모델의 풍부한 힙라인을 따라 흐르다
가, 무릎근처에서 금붕어의 꼬리를 닮아 하늘거리는 투피스
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군더더기없는 black의 롱 부츠. 매킨
토시의 화면에서는 모델의 걸음이 정지하여 있었고, 머리속
에서는 당신이 조금 앞서서 청담동의 유난히 환하게 빛나는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사념이 많은 것이
아니라, 사념의 본질에 가까운 바닥이 상당히 깊은 Corn
Flower Blue의 샘인 모양입니다.


여인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남자를 남자로 만듭니다.
여인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남자를 행복하게 합니다.
여인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남자를 고독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몸에 단지 1평방 센티미터라도 손끝이 닿아
있을 때, 마치 옹이구멍으로 초원이 멋지게 펼쳐진 세상을
내다 보는 것과 같이, 감당하기 힘든 기쁨으로 몸을 떨게 되
는 행복이, 태풍에 밀려 하얀 백발을 bright skyblue의 창공
으로 흩날리며 장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파도처럼 몰려 듭
니다. 전속력으로 다가오는 그 행복은, 전속력으로 다가오는
불행과도 별반 다름없이, 때로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리기
도 하고, 한 사내의 삶을 침묵하는 소주병앞에 두고 안전한
도시의 테이블에 앉은 채로, 한없는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
는 아득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득, 나는 다시
당신의 눈동자를 통하여 고독이 아닌 세계를 들여다 보고 싶
은 생각을 합니다. 당신과 함께 라인강의 급한 물결을 따라
모젤부근에서 머물던 따사로운 와인과 태양의 시절. 부질없
다는 느낌이 곧바로 뒤를 잇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꿈은 꿈
이고 바램은 바램입니다.

저녁이 수채화의 붓을 빨아낸 물통처럼 점점 짙게 다가올
때, 한무리의 새들이 느린동작으로 석양을 향하여 곧게 날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인의 음성은 때로 새소리를 닮아내
어, Y염색체를 가진 무리들을 몽롱하게 만듭니다. 나는 자신
의 음성이 어떤 느낌을 주는 것인가가 궁금해진적이 있습니
다. 나는 나의 음성이 어떤 느낌으로 XX염색체를 가진 이들
의 고막에 진동을 일으키는 것인가? 하는 중요할 것 같기도
하고, 불필요 할 것 같기도 한 것! 말입니다. 많이 오래전
에, 당신 음성, 참 포근하네요. 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
고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녹음기에서 들려오는
전혀 나같지 않은, 한 남자의 음성을 들으면서, 나는 나자신
이 때로는 가장 알 수 없는, 영원히 가까히 할 수 없는 타인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는
무비카메라로 하루종일 찍은 나를 본다면, 그 Steel Blue 영
상의 스크린에 비쳐진 나는, 절대로 나자신을 잘 알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단 한번도 타인이 되어 정확하게 바라다 볼 수 없는 영원한
구제불능의 타인인 것입니다. 그런 타인과 타인이, 결국 타
인으로써 만난 우리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서투른 외줄타기 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당신을
통하여 무엇을 보려 했던가? 나는 당신에게 언젠가는 떠나버
릴 어떤 존재가 아닌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내려 하면 할수
록, 습기 가득한 창이되어, 결국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Dim Grey의 절망입니다.

차가운 이슬이 표면에 맺히는, 하얗고 두껑이 깊은 예쁜 유
리물병을 닦으며, 예쁘긴 하나 닦기에 불편하여 하얀 두껑에
검은 먼지가 묻어 나는 것을 보며, 앞으론 두껑이 단순하고
평평한 것으로 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혜라는 것이
겠지요. 문득 이 물병을 들고 물병의 두껑보다 더 햐얀 이들
을 드러내고, 또 그 가지런한 치아들 보다도 더 하얀 미소를
내려 놓던 당신의 동그란 어깨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하얗고
아름다운 당신, 당신이 고른 이 물병, 아름다운 그러나 불편
한 물병. 나는 새로운 지혜를 다시 머리에서 가슴으로 끌어
내려 봅니다. 단단히 자리잡아 다시는 잃어 버리지 않도록,
치매가 심하거든! 하며 스스로 놀림이 되는 머리보다는, 언
제까지라도 추억을 잊지않는 가슴속의 창고에다 신참 지혜를
조심스럽게 진열하여 둡니다.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 젊은
여인의 사랑,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온 세상을 다 불태워
버릴 듯한 뜨겁고 단지 몇 단어에서 출발하는 1,000 가지 단
계의 10,000갈래의 곁 길을 가진, 그래서 늘 나의 위치는 어
디쯤인가를 더듬 거려 보아야 하는 개미굴의 미로와 같은 난
이도 4.98의 멀고 높은 사랑... 사랑해요!라는 말에 데일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마침내 우연히 얻은 지혜. 얻고 싶지 않
은, 피하고 싶은 지혜이지만 스스로 찾아와 머리 한쪽에 자
리잡은, 불행하게 살아낸 시간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그 지
혜였습니다.

당신자요? 그냥이요...
가슴이 답답하네요... 꿈속의 당신 모습을
사진에서 또 보았네요.

라는 짧고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문자 메시지를 받
았습니다. 이 전화는 전에 형님이 쓰시던 것이기에 보여 드
렸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형님은 내것이 아닐 것 같
다. 라고 짧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누구의 것일까? 내게
당신이라고 부를 사람은 이젠 이 행성에 존재 하지 않는
데... 그렇다면 아마 잘못 전해진 문자 메시지 이겠지요...
새로 12시 36분에 어느 누구에겐가, 어느 사랑이 보낸 메시
지가 잘못 전하여져 온것이겠지요. 웬지 짧은 메시지에 담긴
애끓는 마음이 엉뚱하게 전해진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그
리고 제 갈길을 가지못한 그 마음이 가엾습니다. 도무지 남
의 이야기 같지가 않은 까닭입니다. 어디 잘못 전해지는 것
이 그 문자 메시지 뿐이겠습니까?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탄
생을 하여 버린, 많은 열정들이 가을 낙엽같이 이 행성위를
굴러 다닙니다. 함부로 굴러 생채기 많고, 아쉬움이 바리바
리 쌓인, 아까운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들입니다. 어떤 행운
의 별을 지닌 사람들만이 특별한 진실한, 그리고 영원한 사
랑의 샘에서 그 맑고 투명한 물을 마시며 진정한 휴식을 누
릴 수 있는 것인가요?

커다란 상수리 나무아래에서 청설모가 탱고스텝으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춤추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그는 잠시 멈추
어 까만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습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하였지만, 우리는 어떤 언어도 통하지 않았으므로 잠
시 바라보다 돌멩이가 물속에 잠기듯이 퐁당! 소리가 나게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몇 마리의 개미가 새로생긴 생소한
영토, 그러니까 나의 몸을 몇 번이고 이리저리 수색에 가까
운 탐험을 하였고, 나는 나대로 또다른 꿈의 세계를 탐험하
고 있었습니다. 한때 진정으로 사랑하였고, 늘 돌아보면 입
안이 바삭하게 말라 아무말도 못하고, 나의 눈동자가 진공에
가까운 공허를 품게하는, 익숙한 그러나 손 닿을 수 없는 얼
굴이 얼어붙은 미소를 몇 군데 낙인처럼 남기고 사라집니다.
이마에 땀이 흐르고 목언저리가 끈적해지는 꿈속에서 나는
자신의 과거를 잊은 개미가 되어 언제까지인지, 어디까지인
지 알 수 없는 탐험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에고가 저희를 괴롭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누가 괴롭다는 말인가? 그 괴로움이라는 것도 그대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모두 에고 의식 속에만
존재한다.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일갈속에 자꾸만 수렴되
고있는 휴일입니다.


세 그루의 소나무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