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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번호를 알고 싶다 -----


BY 카이 2003-09-19

은행에서 남편의 현금카드로 돈을 찾을 때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한동안 헤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도 많은 비밀번호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갖고 있는 비밀번호들   

한두 개의 통장 비밀번호. 현금카드 비밀번호, 전자우편 비밀번호, 인터넷 홈쇼핑  비밀번호, 두 장의 카드 비밀번호, 그외 여러 사이트에 출입하기 위한 비밀번호 게다가 때로는 남편의 비밀번호까지 챙겨야 한다.

전에는 주민등록번호나 전화번호를 비밀번호로 많이 이용했는데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 늘 이용하는 나의 비밀번호는 숫자로 네 자리인데 어느 사이트에서는 영문자를 혼합하라고도 하고, 어느 사이트에서는 다섯 자리 이상을 요구하기도 하니 비밀번호를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아 때로는 비밀번호 하나 기억해내려면 머리가 뒤죽박죽이 된다.

아컴에 글 올리는 데 필요한 비밀번호는 매일 오다시피 하고 내가 상용하는 번호이므로 잊어버릴 리 없다. 그래도 때로 신기하다.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내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짜잔~~~하고 열린다는 것이.

사실 나는 더 많은 비밀 번호를 갖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내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조차 때로 무척 힘이 들어 이렇게 긴 세월을 흘려보낸 걸 보면 내 자신에게 가는 길목에도 특별한 비밀번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밀번호 혹은 비밀기호 몇 개만 닫힌 문 앞에서 외치면 짜잔~~~ 하고 문이 열려 나에게로 금방 이를 수 있는데 나는 그 비밀번호를 몰랐기 때문에 먼 길을 돌아오게 된 건 아닐지.

혹 그런 비밀번호가 있다면 분명 내가 만든 것이 아닐 터. 스스로 만든 것도 잊어버리는 데 스스로 만들지 않은 것을 어찌 알겠는가. 

남편은 엊그제 자신이 친 사고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어머니와 나는 그가 술을 먹고 사고를 친 엊그제의 사건을 반성하는 것이지 정작 근본적으로 잘못 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어젯밤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앞으로도 사고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었인지 어머니와 내가 아무리 말해주어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혹 나는 닫힌 문을 향해서 얘기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 어떤 닫힌 문이 비밀번호 혹은 비밀부호를 외우면 짠 ~  하고 열려 나와 어머니가 하는 말이 그의 폐부 속으로 깊이 깊이 스며들게 할 수는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