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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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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30


BY 녹차향기 2000-12-15

지금은 김장중...
무슨 영화제목하고 비슷하죠?
배추사러 영등포역 뒷쪽에 있는 김장시장을 갔어요.
그 시장은 인근 뿐만 아니라 멀리 인천, 부천에서 야채장사 하시는 분들까지 와서 물건을 떼어가는 도매시장으로 유명한 곳인데,
비가 그친 아침 나절 시어머님과 그곳을 향했지요.
바닥은 이미 질척질척..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함께 안도하며 배추를 만나러 갔지요.

전라도쪽이 아무래도 더 포근하니깐, 그쪽 배추들이 많이 있었지요.
전라도의 '전'자만 나와도 반가우신 어머님은 그 배추들을 보자 마치 고향사람이라도 만난 듯 반가워 하셨지요.
'워매. 워매, 배추가 어쩜 이렇게 꼬습냐?'
속이 노오랗게 귀여운 얼굴을 빼족히 내민 배추들이 어찌나 좋은지,
단돈 600원이란 배추값이 농부들에게 죄송하기만 하더라구여.
그분들 일년내내 농사지어 소비자에게 600원에 나올 때면 산지에서는 얼마나 더 싼 가격에 거래되었겠어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어머님과 질척거리는 시장바닥을 헤매다니며, 갓도 사고, 쪽파, 대파,마늘과 미나리를 푸짐하게 샀지요.
어머님은 그런 것을 흥정하시는 데 장사를 오랫동안 해 보신 탓인지 쉽게 그리고 아주 잼있게 물건을 사셨지요.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상인들은 '며느리랑 다니는 가 봐..'하기도 했구여.
110포기란 적지않은 배추를 쪼개고, 소금간을 가고, 푸성귀들을 다듬어 씻는 데는 하루 종일 시간이 필요했고, 거기 못지않게 많은 육체적인 노동인 따라야 하지요... (주부들은 넘 슬포요...)

그렇지만, 씩씩하고 일을 무서워 않으시는 시어머님이 계시니 얼마나 든든해요. 지금은 피곤하셔서 누워쉬시지만 낼 새벽이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펄펄 뛰는 생새우와 굴을 사오실 거예요.
남편도 어머님과 함께 장을 봐 오는데, 얼마나 집안 일을 잘 돕는지,
오늘도 남편이 배추를 가져날라주고, 뒷정리를 말끔히 해주어서 한결 수월했답니다.

전라도식의 맛있는 김치... 전, 아마 평생 배워도 못 다 배울 그 맛있는 전라도 김치...짭쪼름하고 젓갈맛이 깊이 나는 그 김치를 내일이면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깨(깨소금)도 듬뿍 넣는다는 사실 아시죠?
김장이 끝나면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목욕탕에 같이 가서 뜨끈뜨끈한 온탕에 들어앉았다가 등도 밀어 드리고, 팔도 주물러 드려야지요.
맛있는 김장하는 중이라 피곤하고 지쳐있는 상태이지만, 아무래도 내일은 글 올리러 들어올 짬이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미리 쓴답니다.

전라도 며느리를 보셨으면, 아마 더 좋으셨을텐데.
입맛이 같으면 함께 공유하는 공감대가 훨씬 더 크고, 그 동질의 문화의식이 가족이라는 느낌을 더 강하게 줄 것 같아요.
서울서 자라 짭짤한 김치를 꺼리는 제 입맛을 어쩔 때는 어머님께서 좀 서운해 하셔서요.
오늘도 전라도 여자면 얼마나 좋겠냐구 하셨었거든요.... ㅠ.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미국 국민의 단결을 강조하는 고어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던 하루였어요.
우리의 정치는 언제나 저런 모습을 하려나 싶어서 꿀꺽 군침만 삼켰답니다.

모두 평안한 밤 되세여.
맛있는 전라도 김치가 생각나시는 분, 낼 고무장갑끼고 놀러오세여.
경력이 되도록이면 오래되신 분 더 환영... ^.^;

안녕히 주무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