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하여 가지 않기로 한 친정을 남편이 가야한다고 우겨서 방금 다녀왔다. 어제 할인매장에 가서 젖갈 세트와 통조림 세트, 커피 등을 고르고 나서 차에 오른 남편이 하는 말.
"장모님께 30만원을 드리자!"
헉~~~~~ 이 양반이 제 정신이가?
"자기야, 지난 달 월급 탔었나? 아, 탔구나. 이 번 달엔 제대로 탔나? 아, 타긴 탔지!"
"글먼, 카드로 빼지."
헉 ~~~~~ 갈수록 태산이다. 그 마음이야 고맙지만 나라고 그러고 싶지 않아서 안하는가. 밤 새우고 장사하셔서 자식들 넷을 다 대학까지 가르치신 어머니. 호강이란 호강은 다 시켜드리고 싶다. 그러나 내겐 그럴 돈이 없다.
사실 선물도 젖갈 세트 하나면 우리 형편에 족하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이 자꾸 이것저것 더 사자고 하여 산 것이다.
남편은 돈이 있으면 처갓집에 왕창왕창 퍼줄 사람이다. 그 마음을 충분히 알지만, 세상만사가 마음으로 다 해결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밤새 망설였다. 어머니가 주신 수표 두 장이 내게 있는데 그걸 친정 엄마한테 드리라고 할까말까. 하지만 그 돈은 어머니가 아파트 청소하셔서 번 돈인데. 게다가 친정은 이 번에만 가는 것도 아니고.
나는 결국 엄마에게 돈을 드리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대신에 동생에게 10만원을 주라고 남편에게 수표 한 장을 건네주었다. 혼자 사는 동생은 얼마전에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었다. 병문안도 가지 못한데다가 하나밖에 없는 조카를 위해서 산 선물도 없으니 그리하라고 했다.
남편은 그 것만도 고마워(?) 냉큼 수표를 받아서 지갑에 챙겼다.
우리집에 도착한 남편. 안방에 짱 박혀서 내가 친정에 쉬쉬하고 알리지 않은 자신의 비리(?)를 스스로 밝힌다. 에공.
"제가요. 두 달 동안 직장에 못 나갔어요. 다른 일을 좀 하려구요. 차 고치는 일인데요."
문밖에서 듣자하니 오빠에게 어쩌구저쩌구 한 참을 얘기한다. 참내~~~
빨리 집에 가야겠다. 저러다가 음주운전하여 차 박은 것도 다 얘기하겠다. 범생이인 우리집 식구들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아침 먹고 금방 점심 먹고 자리 털고 일어났다.
엄마는 얻덕받이 위에 주차시켜 놓은 차를 끌고 내려 오라고 하더니 이것저것 잔뜩 싫어놓으셨다. 사과 한 상자, 갈비, 수정과, 식혜, 대추, 쥬스 등등.
오빠는 느닷없이 등장한 시커먼 승합차를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엄마는 멋모르고 잘 가라 아쉬운 듯 손 흔들고.
돌아오는 길에 건빵이 자랑을 한다.
"엄마, 나 이모가 이 만원, 외할머니가 봉투 주셨네!"
이 만원은 너 쓰라 하고 봉투를 억지로 뺏어 열어보니 지폐로 십 만원이 들어있다.
장모님께 30만원을?? 이 사람아. 사위가 돈 줄 형편이 아닌데 돈을 준다면 두 배 세 배로 되돌려주실 분인데. 돈 드릴 생각 하지 말고 ---(이하생략) . 암튼 말만이라도 고맙구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