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초록을 치맛단 삼아 봉긋 솟아오른 바위산
먼발치 눈짐작에 한뼘밖에 되질 않아
오를 수 있겠다. 유혹한다.
산밑에 다다르니 높은 정상 보이질 않아
정말 오를 수 있겠다. 장담한다.
풀한포기 나지 않아 미끄러울 것 같은 바위산에
한발 내 딛어 보니
까실 까실 많은 숨구멍을 내며 살아있어
등산화에 힘을 실어주니
정말 할수 있겠다. 확신한다.
한발 한발 허리펴 오르길 단 몇번
어느새
두손 두발 바위에 밀착시킨 아이의 몸짓이 되고
손바닥은 활발한 피돌림에 빨갛게 살아난다.
아무생각도 나질 않는다.
그저 다음에 발 디딜 바위틈새를 찾기에 온 마음이 쏠려
두려움도 잊었다.
어디 한 군데 물담아 둘곳도 없어보이는데
바위에 물이 스며난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들어보니
어느새 독수리봉이다.
등산로로 올라온 이들이
바위타고 올라온 거냐는 놀라는 질문에
그 길밖에 몰라서...
황당한 답을 한다.
올라 온곳을 내려다 보니
경사많은 바위산을
어떻게 올라 왔을까
발아래 풍경에 어찔 현기증이 난다.
등산가인 시누이 남편이 있다.
그이는 가파른 바위를 맨땅 걷듯 한다.
이 바위산을 오르면서
절대로 혼자오면 안된다고
혼자서 내려가면 더더욱 안된다는 경고를 받았었다.
초보자는 위험하다고..
올라갈때의 두려움은
내려갈때의 공포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엉금엉금 기어 내려오는 동안
내려다 보지 말아야지
발디딜 곳만 찾자 되새겨 보지만
두 발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저 아래의 공포감은 대단했다.
두다리가 후들거려 도져히 지탱할 수가 없어
그저 바위에 붙어있는 그 형상대로 한동안 있었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 만큼
나의 부르짖음은 명료해 졌다.
하나님. 저 내려갑니다.
떨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한눈팔지 않게 해 주세요.
형식이 사라졌다.
주위환경에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런적이 있었다.
목표가 확실히 정해지고
해야할 일들이 눈앞에 있을때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하는 고지를 정복하기 위해
앞만보고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올라가야할 곳의 높이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한번 힘을 모아주는 버팀목이 되었었다.
내려가야할 때가 되었을때,
아니, 내려가야만 했을대,
내 서 있는 곳의 높이는 두려움을 가중시키고
보이지 않는 나락은 공포심으로
밑이 보이질 않았다.
이곳이 바닥일까 싶으면
더 깊은 수렁이 내 발밑에 있었고
이젠 끝이겠지 하면
막다른 골목에서 헤메는 내모습만 확연해 질뿐이었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를때보다
산을 내려오는 것이 더 조심스럽듯
인생의 내리막길 또한 그러한듯 하다.
내려온 바위산을 올려다 본다.
혼자의 힘으로 내려온 내 자신이
자뭇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내려올때의 두려움은 잊어버리고
나는 또 다시
바위산을 오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