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 흐르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 좋았습니다.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굴다리가 있는것도 좋았습니다.
개나리가 담을 치는
장미가 노래를 하는 사람보다
꽃이 많은 동네라 좋았습니다.
달빛이 깊고 깊은 옥같은 동네에 대나무 숲이 손짓하는 파란 대문집
거기 희망하나 걸어 놓았습니다.
그여자 이야기.6 (옛날..옛날에...)
옛날.. 옛날에..
시냇물 있는 다리를 건너는것이 좋았던 집.
신작로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난 세번째 골목이 유난히 길었는데 한참을 걷다보면 점방이 나오고 그 점방을 지나 칠이 벗겨진 검정 철대문이 있는집이 사년전 아이들과 내가 살던 집이였다.
안경쓴 할머니가 점방을 지키고 있는 그 골목 끝집 그러니까 내가 살던 그 옆집에는
채송화 집사님~~!!그렇게 부르면 집사님은 채송화처럼 작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손잡아 반겨주었던 그집..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설겆이를 하면서 갑자기 못견디게 채송화 집사님이 보고팠다.
하루 일을 접고 찾아가기로 했다.
옥천군 옥천읍 옥각리.
"이 동네는 "옥"자가 세개나 들어가서 참 예뻐요. 혹시 나중에 옥새하나 받아들지 않을까하는 예감이 드는데요“하고 인사를 대신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집주인의 부탁으로 내게 열쇠를 건네 주시던 집사님께서는 “그러게 말이예요.” 하고 웃음으로 답했던
옛날..옛날에...
아이엠에프 파고를 넘지 못하고 사년전 모든것을 다 잃었다.
수중에 있는 몇십만원.
남편은 돈을 벌어보겠다고 외국으로 떠났고 아이들과 남은 나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집념..아니 오기.. 아니지.. 목숨보다 더 절박했던 아이들과 헤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대로 아이들을 놓았다가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것 같았다.
아직..아직.. 한참이나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
어떻게든 방값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을 떼어놓고 일년후 만나기로 하고 일을 했는데 그날 눈이 참 많이 왔던것 같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시간 아이들이 보고파서 전화를 했는데 엄마에게 찾아 가겠다고 두아이들이 재를 넘어 나갔다가 눈속에서 길을 잃어 경찰서에 보호되었다는것이다.
당시 딸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그리고 사내녀석은 초등학교 4학년이였다.
높은 빨래줄에 널어놓은 저네들 옷가지를 어떻게 걷어갔는지 할머니는 도저히 모르겠다며 혀를 끌끌 찼고 저희들 키만큼 큰 베낭을 어떻게 짊어지고 갔는지 또한 이해가 안간다며 "영악스런 놈들..."하는데 그 말끝은 들리지도 않았다.
고개가 험하고 깊어 눈이 내리면 어른도 걷기 힘든 산길을 저희들끼리 찾아 나섰다는거다.
전화를 내려놓고 당장에 내려가는데 아이들만 무사히.. 아이들만 무사히... "하는 기도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도 할수 없었다.
그리고 경찰서에 보호되어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울음을 삼키면서 뛰어가는데 걸음이 허공중에 떠다니는 듯 했다.
딸아이는 갑자기 변해버린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해 시력을 잃어 안경을 쓰게 되었고 장난스럽고 명랑했던 사내아이는 말수가 적어졌다.
나를 본 아이들은 좋아라 했다.
“엄마. 오빠가 나 발시렵다고 오빠 털신발 벗어주고 오빠는 내운동화 신고 걸어왔어”하는데 아직도 큰녀석 발에 작은 딸아이가 신던 꺾어신은 운동화가 뒤꿈치에 삐죽 삐져 나와있었다.
눈길을 내려오면서 얼마나 발이 시려웠을까.
내시선이 아들녀석 발에 머물자 “엄마한테 갈려면 아직 멀었는데 발시렵다고 울어서 내 신발 하고 바꿔 신었는데 그래도 나는 발 안시려워”하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엄마.나는 발 안시려운데 왜 울어 , 울지마.. ”하자 딸아이도 “엄마. 나도 오빠 신발 신어서 발안시려웠어. 울지마”하다 저희들도 따라서 운다.
도시는 싫었다.
너무 갖은것이 없어서.. 사실 솔직히 말하면 가난이 두려웠고 사람이 무서웠다.
아이들이 겪게 될 궁색함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시골생활을 꿈꾸던 나는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이렇게 해서 꿈이 이루어지는구나..하는 마음으로 시골로의 귀향을 결심했다.
옛날.. 옛날에...
부뚜막.. 연탄광.. 찢어진 문풍지.유리문이 없는 마루..쥐오줌이 묻어있는 방 천장.
뒤숲으로는 대나무들이 울고 있었다.
대신 넓은 마당이 있었다.
장날 새벽 채송화 집사님과 함께 소전 으로 가서 누렁이 새끼 세마리를 샀다.
그리고 넓은 마당에 풀어놓았다.
외롭지 않았다.
짐승에게 만큼은 배신당하지 않을것이라는 확신.
그만큼 정이 그리웠을때 이웃해 있는 채송화 집사님의 집에 가면 마당가득 키작은 꽃들이 넘실거렸고 제혼자 시도때도 없이 뚝뚝 떨어지는 능소화꽃을 주워 찻잔받침으로 만들어 차를 마시고는 했던 그 집...
집사님은 내게 교회를 다니라고 했다.
"싫어요. 그런 말씀하시면 저 다시는 여기 안와요~!!"하면 "화내니 무섭구먼..."하고 슬쩍 웃어넘기었지만 내가 얼마나 많이 집사님 속을 상하게 하는 말인지 안다.
(神은 ...神이 있다면 이럴수는 없어....)
채송화 집사님은 일을 갔다 늦는날이면 아이들 저녁밥을 챙겨 주고 무서워 하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 주었다.
수십번의 시행착오로도 계속해서 꺼지는 연탄불을 붙이다 결국 몇장의 번개탄으로도 불을 붙여내지 못한날..
부뚜막에 앉아 울고 있는데 전기장판을 내오면서 나를 붙들고 더 서럽게 울어서 내 울음을 달래주고했던 집사님.
옛날.. 옛날에....
조금만 바람이 불어대도 대숲에선 휘이~~ 휘이~~~ 하는 들판소리가 나는 서러운 그 옛날에...
. 오래묵은 포도주 한병 들고 오셔서는 수제비끓여내어 아이들 먹이고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미워하면 안된다..하고는 내손을 꼭 잡다가 "어째 이리 손이 곱누? 세상은 공평해서 이젠 일좀 하라고 하는갑다.. 고생을 고생으로 생각하면 안되고 즐겁게 매사에 즐거운 생각으로 몸 건강한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거 알지?"하고 다독여주면
"아니요... 고생을 뭔 감사로 생각한데요. 고생은 고생이지.. 나는 고생해도 싸요. 왜 사람을 안미워해요? 미운사람은 미워해야지.. 난 미워하고 말껴..엄청 많이 미워할건데..씨이..."하고심술 부리면...
"그럼 안된다.. 그럼 안돼... "하고 안타까워 하다 기도 한다.
"에고.. 집사님.. 장난한거예요.. 그럼요. 그래야지요.. 안미워할께요.기도 안하셔도 되요.. 하지마세요."
우리집 누렁이 새끼난날 나보다 더 기뻐서 미역국 한 솥끓여오셨고 두달이 지난 장날..
고물고물한 다섯마리 새끼강아지 차에 싣고 소전에 나가 함께 팔아 주고는 어미와 떼어놓는것이 못내 마음아프고 미안해하여 눈이 젖어 있는 내게 묵집으로 끌고 가서 소주한잔 건네주시며
"옛날 얘기 하며 살날 있을거야.. 누구나.. 누구나.. 사는것은 다 힘들어...그래도 예쁜 두아이들.. 저렇게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 있으니 얼마나 좋아.. 세상에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 참 많다.. 좋은것만 생각하고 좋은것만 바라보고.. 그렇게 살아...알았지? 반드시 옛말 하며 내 생각 할때 있을거다."했던 채송화 집사님.
비오는날이면 부침개 붙여놓고 우리 옛날이야기 하자 하고 벗해주었던 그리운 채송화 집사님.
일년을 채우고 더 깊은 시골로 이사가면서 떠나올때...
"소식 전해.. 소식 꼭 전하고... 알았지? 잘 살수 있을거야.. 씩씩해서... 그보다 얼마나 더 씩씩할까? 내 저리 씩씩한 여자는 첨 보았네.."했던 채송화 집사님.
그런데 나는 무심하게 소식 한번 전하지 못하고 삼년을 보냈다.(나쁜.....)
오늘 아침..
시냇물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는것이 좋았던 그 동네를 찾아갔다.
"집사님.. 채송화 집사님!!" 하고 문을 흔드니 문이 잠겨있다.
안채가 깊어 못듣는 경우도 허다 했으니...우체통안에 손을 넣어보니.아~~!! 아직도 그대로 있다.대문 열쇠.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채송화가 피었던 그 자리에 국화꽃이 이 마당끝에서 안채 끝까지 온통 국화꽃이...마음의 꽃자리처럼 기쁨으로 가득찬다.
묶어논 누렁이 한마리.. 요란하게 짖어대다가
"괜찮아.. 괜찮아.. 이뻐.."하고 손을 내밀고 다가가니 금새 꼬리를 흔든다.
반들반들 빛나는 대청마루...풀먹여 걸어놓은 옥양목 커튼. 가지런히 놓인 신발 한 켤레만 놓여있는 것을 보니 어디 나가신 모양이다.
능소화 나무아래 서보았다.
대책도 없이 툭툭 떨어지던 꽃이 색깔과는 다르게 싱겁다.. 싱겁다.. 했던 그 꽃나무..
옛날.. 옛날에..
구중궁궐 복숭아 빛 뺨을 가진 자태가 고운 어여쁜궁녀가 하룻밤 임금님의 성은을 입었는데 후로 빈의 처소엔 한번도 찾아 오지 않았다네.. 임금님을 기다리느라 담장을 서성이며 발자국이라도 들리지 않을까 행여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안타까이 기다리다가 잊혀진 여인은 상사병이 깊어지며 죽었다지..아이고 불쌍해라.
구중궁궐의 여인은 내일이라도 오실지 모르는 임금님을 기다리겠다는 유언에 따라 담장에 묻혔는데 그 자리에 여름이 되면 꽃이 피기 시작했다지.
.다른꽃보다 더크게 더 활짝 꽃잎을 벌리며 담장위로 올라가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귀를 활짝 열어놓다 툭툭 떨어지는 그 꽃이 능소화라네.. 했던
옛날..옛날에...
그 꽃잎 주워들어 찻잔 받침 하며 마주앉아 능소화 처럼 귀활짝 열고 이야기 나누며 나직히 행복해 했던 저 꽃자리.
들고온 케익 마루위에 올려놓고 메모지한장 끼워 놓았다.
채송화 집사님.!!
옛날.. 옛날에.. 저 길 잃고 헤멜때.. 집사님이 참 어여뻐 해주셨는데...
옛날.. 옛날에 말이지요.
맨날 불꺼트리고 앉아있는 저 쳐다보면서"연속극이 따로 없네... "했던 저....누군지 아시지요? 능소화처럼 먼곳을 향해 귀열어놓고 산다는 저 누군지 아시지요?
사랑해요.. 집사님.. .눈오는날 다시 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