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다는 것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 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 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종종 시인들의 홈피를 기웃거린다. 물 한 모금 마실까 하고. 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홈피에서 이 시를 읽었다.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산다. 일흔이신 어머니는 아파트 청소를 하러 다니시면서 텃밭도 가꾸고 자신의 빨래는 스스로 하시는 분이시다. 보기 드문 그 부지런함과 그 부지런함을 받쳐주는 건강에 탄복할 때가 많다.
어머니는 아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며느리인 내 앞에서 아들의 흉을 보면서 나의 역성을 들어준다. 덕분에 나는 분이 조금 풀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말썽꾸러기 아들이 회사를 꾸준히 나가는 듯한 기미만 보이면 뭔가 나의 살림살이에 불만을 은근히 내비치신다.
직접적으로 나를 나무라지 못하는 이유를 내 나름으로 가늠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가 내 편을 들어줄 때는 고맙다가도 나에게 불만을 내비치면 야속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는 그 정도의 인간이다.
이런 저런 불만을 악에 받쳐 다 쏟아버리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심지어는 "자식들을 왜 그렇게 키웠느냐!"고 어머니의 아픈 곳을 송곳으로 푹푹 찌르고 싶어질 때도 많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나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시지 못하듯 말이다. 그 이유의 또렷한 정체를 이 시를 보고 깨달았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열심히 살고 계시니! 동전 몇 푼짜리밖에 안 되는 감정으로 어머니의 아픈 상처를 헤집을 필요가 있겠는가. 어떤 목적지인 오수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싸우면서 갈 필요가 있는가. 나이 일흔인 노인이 이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계시니!
어머니도 그런 심정일까.
나는 컴퓨터를 통해서 종종 사랑하는 시인들의 시를 읽고 어머니는 카셋트 테이프에 녹음된 목사의 설교를 틈틈이 듣으신다.
시인의 경지까지는 가지 못해도 이렇게 그들의 가슴에 고인 물 한모금 얻어마시면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