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밥상 머리에 그놈의 콩잎이 문제 였다.
남편은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으로 묵은 시커먼
된장이나 젓갈에서 삭힌 콩잎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남편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던중
"경상도 사람은 소나 묵는 이 질긴 콩잎을 왜 그리도
좋아 하는지 당체 알다가도 모르겄당께..
우리 전라도 사람은 아예 깻잎을 묵는디.."
" 느그 전라도 음식 묵을것이 마 뭐있노.."
" 오메? 시방 뭔소리 허요? 당신 저번에 우리 친정
잔칫날 당신 멀리서 온 손님 이라고 홍어회랑
홍어국 이랑 맛나게 안해주등교?"
(경상도로 시집 온지 20년 가까이 되다보니 내억양은
어느새 고향을 알수 없는 요상한 발음으로 변한상태)
"야야!! 그기 어디 사람 묵을 음식이가? 내사 마 어거지로
근근히 묵긴 했다만 홍어 냄새에 숨이 맥히는줄 알았구만.."
"그래도 당신 당체 그런 소리 허지마쇼..
뭐 그비싼 홍어를 아무나 주는줄 아는겝인디
전라도선 귀한 손님이나 큰일 이 있을때 나오는
최고의 접대 음식 이랑께요.."
" 야..마 듣기 싫다. 밥이나 무라~"
"참말로 요상헌 아저씨네.. 아니 대접 잘해주고
당신헌테 나가 꼭 이런말 들어야 쓰겄소?"
"참말로 말많네. 니또 전라도 행사하나??"
남편의 목소리가 의외로 커지면서 사태는 점점
크게 벌어졌다.
"뭐라꼬요..나가 전라도 행사 한다꼬.."
"느그 전라도는 하여튼 이상한기라..오죽허믄
전라민국 이라 허겄나.."
"아니 우리 전라도 사람이 단결 잘허고 똘똘 뭉쳐서
잘살아 보겄다는디 당신네 경상도 사람들이
도와준것이 있나..우리 전라도가 우쨌는데.."
"....................."
"우리 전라도사람이 당신네들 헌테 쌀을 달라나
밥을 달라나,옷을 달라나,왜!왜! 그라는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체 핏대(?)를 세우는
나를 보고 남편은 어이가 없었던지
"그래, 한편으론 느그 동네 사람들 단결 잘되는것 보고
부러버서 그랄수도 안있겄나.."
"아니,그라믄 첨부터 고로케 인정 허믄 되는것이제
꼭 고로케 사람 염장에 불지르믄서 까정 말헐 필요가
뭣이 있다요?.."
"그라고,나가 당신허고 첨만나서 연예 헐때 당신친구들
이구동성 으로 시집 안간 전라도 친구 있으믄
소개좀 해달라고 목을 메든만..참말로 웃기는 사람들이여.."
"어야! 마 시끄럽다.. 고만해라..이.."
"뭣을 고만허긴 고만해..아니 데체 어떤것이
전라도 행세요? 잉??"
" 니 나가 저번 대선 때도 투표허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을 것인디 와 하노?"
"아니 고것은 국민의 의무고 나가 대한민국의 유권자로서
내 권리 행세를 한것 인디 뭔놈의 당신이 투표를 혀라
허지마라헐 권리가 어디 있소??"
"그라니까 니가 나말을 않들으니께 나헌테 그런말 듣는거 아이가?"
"참말로 비겁 허구먼..자기들 표가 쪼께 약허닝께
내보고 투표허지 말라고허고..."
" 야!야! 마 됐다 안카나.. 그만해라.니도 니알아서
투표했고 내도 내 알아서 투표 했으믄 됐다 아이가.."
"................."
"................."
그놈의 하찮은 콩잎 하나로 인제는 서로 앙금을 갖고
있었던 저번 대선때 투표 이야기 까지 나오게 됐다.
도데체가 근 이십여년을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부부가
이럴땐 꼭 원수가 따로 없다.
물론 남편이 좋아하는 기호 식품에 태클을 건 내가
잘못 이지만 꼭 부부싸움 끝에는 전라도 행세머리로
끝을 본다.
남편에게 이런말을 들으면 어찌 그리도 분하고 억울한지..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나가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만 나역시
내고향을 남편이나 다른 사람이 흠잡아 이야기 할때면
참을수 밖에 없는 애통함(?) 에 속이 바글바글 끓는다.
끝내 식사를 하다말고 남편이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너부터 나한테 그런소리 안들을라카믄 마.. 잘해라.."
"웃기고 있네..정말..."(마음 속으로)
"...................."
그렇게 남편은 시한폭탄을(?) 가슴에 안고 출근을 하고
나는 남편이 먹다 남은 콩잎을 쓰레기통에 그대로 같다
확 하고 부어 버렸다.
"당체 알다가도 모르는 사람 이랑께..아니..그라믄
뭣허러 시방 나하고 사는것이여..."
속으로 궁시렁 거리며 열받으면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게
최고라는 생각에 뒷설걷이랑 빨래를 한참 정신없이 하다보니
어느덧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땀도 식힐겸 잠깐 쉬고 있는데 휴대폰벨이 울렸다.
벨소리를 보아하니 남편의 전화인것 같은데 이걸 받어 말어하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더니 지금 집앞에 와있으니
나보고 나오라 한다.
남편이 점심 먹자며 자기가 단골로 다니는 식당으로
나를 안내 했다.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전에 남편왈
"니..아직도 화났나? 마..그기 아니고.. 내몇년전에 인천에
갔던적 있었제? 거그서 월급좀 늦는다고 전라도 인부들이
단체로 나를 때려가지고 나가..마..병원에 입원해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니 걱정 할것 같아서 말은 안했다만도
마.. 오해는 풀어라..느그 전라도 사람이 다 그란다는것이
아니고 그런 사람도 있드란말이다.이말이다.."
"오메?? 그때 그라믄 바쁘다고 집에 한참 못올때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꼬요?"
"그래에~"
"아니! 워째 인자사 말허요.우라질..아니 울 냄편 팬 그놈들이
어디 사는 누구여??"
"느그 고향사람..."
"................."
(남편이 10여년전 잠깐 사촌형이 사장으로 있는
인천의 **중공업의 하청 책임 관리자로 근무 했던적이 있었다.
그때 전라도 직원들을 많이 채용해서 함께 있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월급을 좀 늦게 주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이전라도 직원들이 남편이 사장 동생 이라는 이유로
집단 린치를 가했던 모양이었다.
남편도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고 한등치 한다는
사람인데 집단으로 달라들다보니 어찌 피할 방법이
없어서 서로 주먹다짐이 오갔던 모양이었다.
그뒤로는 남편에게 전라도 사람이 곱게 보일리 만무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뒤 주문한 식사가 나왔는데
오! 마이갓!! 그웬수놈의 콩잎이 떡하니 또 식탁위에
올라와 있었다.
참말로 나가 살아도 못살어.. 가다가 시장에 들러 남편이
좋아하는 살통통한 멸치젓갈하고 콩잎이나 사가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