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집 가까이에 사는 남편 친구 내외와 외식을 했습니다. 작년에 남편과 결혼하기 직전에 그 친구 집을 방문한 이래로 처음이지요. 버스 운전을 하다가 지금은 개인 택시를 몰고 있는 그 친구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가 생각 나네요.
버스 운전사가 박봉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저는 초라한 집과 수더분한 아내 등등을 연상했었어요. 그런데 그의 집은 24평 아파트로 아주 깔끔했고 저와 동갑인 그의 아내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으며 금방 잡지의 표지 모델로 카메라 앞에서도 될 만큼 세련된 여인이었습니다.
이십대 초반에 서로 첫사랑으로 만나 결혼하여 거의 이십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그들 부부. 그런데도 단정한 모습으로 붙어앉아 아내는 남편의 성실하고 가정적인 면을 칭찬했고 남편은 아내의 살림 솜씨와 변함없는 자태를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일 년 반만의 만남이어서 조금은 어색했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싫지 않아서 말수 적은 저 답지 않게 붙임성 있어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먼저 아줌마들 공통의 화제인 아이들의 공부 대해서 친구의 아내에게 슬쩍 물어봤지요.
"과외는 어떻게.... 좀 시키세요?"
"아뇨...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안 시켜요. 이 근처 시화공고에 다녀요."
자신있게 대답하는 모습에 저는 조금 놀랐지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는 그녀가 외아들인데 공고를 보낸다? 제 상식으로는 그 정도 살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공고에 보내고 또 그런 사실을 자신있게 말한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지요. 특히나 요즘 엄마들 얼마나 극성스럽습니까. 자식이 공부 안 하면 너 죽고 나 죽자며 막무가내로 악쓰고 파출부를 해서라도 비싼 과외공부를 시키는데.
남편의 친구가 말하기를, 자기 아내의 성격이 무척 밝다고 하더군요. 개인택시를 모느라 새벽 5시에 들어오니 아내는 동네 아줌마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식당 밖에 놓인 파라솔 밑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 동안에도 그녀는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가 하면 저녁 운동 모임에 잠깐 갔다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흘러갔네요.
제게는 초등학교 오학년인 아들이 있습니다. 형편에 맞게 학습지 두 개를 하고 저와 함께 하루에 한 시간씩 공부를 하지요. 그런데 공부에 의욕이 잇어서 하는 게 아니라 무서운 아빠가 뒤에 딱 버티고 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식입니다.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가르쳐 준 것도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고 모르는 단어는 물어보라고 해도 어물쩡 넘어가버립니다. 엄마가 조금만 한눈을 팔면 학습지는 엉망으로 되어있지요. 다행히 엄마와 공부한 과목은 성적이 좋게 나오기는 합니만.
요즘은 하도 답답하여 같이 공부할 때마다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 심기 약한 아이는 금방 눈물을 글썽거리고 울먹이곤 하네요. 어제는 땀까지 흘리더군요.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굳이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억지로 시킬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토실토실 살이 찐 아이가 침대 위에 벌렁 누워서 텔레비젼을 내쳐 보거나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려는 모습을 보면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친구 부인의 결정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조금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 아직 무언가를 결정하기에는 이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