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남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세 번만 내 이름을 불러 달라고 말이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부탁치고 너무 쉬운 것이어서인지 피식 웃으며 그러마 했다. 출근할 때 한번, 중간에 전화해서 한번, 저녁에 퇴근해서 한 번 이렇게 세 번이면 족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내가 그의 꽃이 되어 주지 못해서 일까? 남편은 그 약속을 자꾸만 잊는다 그래서 퇴근 후 내가 상기 시켜주면 그 자리에서 열번도 넘게 내 이름을 불러 준다. 나는 그게 하도 우스워서 큰 소리로 웃고 만다. 내 이름은 김 건숙. 세울 건(建)에 맑을 숙(淑)으로 아버지가 지어 주셨는데 난 어렸을 적 부터 예쁘지 않은 내 이름에 불만이 많았다. 다만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는데 그런 만큼 내 이름을 잘못 기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년이 바뀌어서 출석을 부를 때면 꼭 '진숙'으로 불리워 졌고 예전에는 통학할 때 전철 패스권이라는 것이 있었는 데 역무원들도 건숙이 아니라 진숙으로 기재하는 둥 제대로 내 이름을 적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름을 적을 때 괄호를 치고 한자를 적어넣 는 버릇이 생겼다. 수난을 많이 받은 내 이름 덕에 난 내 아이만큼은 이름 을 아주 잘 지어 줄 것이라는 결심을 하였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소설을 쓴다며 주인공 이름 을 '유진'으로 했는데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이름으로 할 것이란 생각도 했었다. 그 당시에는 그 이름이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자마자 난 이름 짓는 작업부터 했다 옥편을 펼쳐놓고 이런저런 이름을 지어보았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작명소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내 아이 이름만큼은 꼭 내 손으로 지어주고 싶었기에. 고심 끝에 지은 이름이 '은비'였다. 나중에 회갑이나 칠순잔치때 불러도 우스운 이름도 아니 고, 그 때만 해도 별로 흔하지도 않았으며 부르기도 편하 고 부드러워서 그걸로 결정했다. 아이를 낳자 자연스레 나는 '은비 엄마'로 불리워졌다. 그러나 그게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고 오히려 듣기 좋았다 늦은 나이인 서른 하나에 아이를 낳아서 아이에 게 더욱 애정이 가서인지 오히려 내가 은비엄마로 불리 워지길 원했는지 모른다. 필림을 맡길 때도 세탁물을 맡길 때도 나는 당당하게 은비란 이름을 말해줬다. 더 이상 나는 김 건숙이 아니라 '은비 엄마'가 되어 있었 고 그렇게 듣는 것 또한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얼마 전 강좌 하나를 듣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내 이름이 불리어졌고 그 하나로 인해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그 동안 내가 이름을 잊고 살았구나'하는 깨달음 이었다. 그 때부터 내 이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누구도 나 대신 살아 줄 수 없으므로. 남편이 하루에 세 번 내 이름을 불러 주는 것도 좋지만 당당히 남들에게 내 이름이 불려지기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 그저 안일한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내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나를 내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을 내년의 목표로 정했다. 내년에 못하면 후년도 좋고 그 때도 못하면 3년 4년이 걸려도 결코 부끄럽지 않고 남들이 인정해 주는 값진 이 름을 갖는 것 말이다. 마음이 무척 바빠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