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은 목이 빠져라 기다렸었던 비였지만 좀 잦아지려 하니 이 비도 그리 반갑지만은 않네 그려.
한참동안 가물때에는 아침 저녁으로 텃밭의 푸성귀들에게 맛 없는 수돗물만 먹여서 미안했었는데 산성비니 뭐니 해도 어쨌든 비가 내려줘서 내 마음 기쁘고 좋다네.
숙이 아줌마!
오랫만에 솔직히 말하면 태어나 처음으로 그대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네.
결혼과 더불어 여자의 인생은 주인공이 바뀐다고들 하던데 아줌마의 경우도 그러하지는 않는지 한번 되돌아보길 바라네.
처음엔 그리 살지 않겠노라 확신했겠지만 아마도 지금은 다른 아줌마들이랑 별반 다르지 않을껄?
남편 뒷바라지하랴 두아들 치닥거리하랴 별수 없이 아줌마의 인생 역시 주인공이 바뀌었을걸?
그런데 숙이 아줌마!
요즘 아줌마를 보니 아러한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흔적이 자주 보이더구만.
결코 만만치 않는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정보지의 구직란만 살피며 전전긍긍하던 그대가 역시 아이들을 핑계삼긴 했지만 어느날
갑자기 고가(?)의 컴퓨터를 들여와 오히려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질 않나, 더 놀라운 건 텅빈 거실 한쪽 공간을 삐까번쩍한 피아노 1대로 가득 채워버린 그 용기는 정말 칭찬해주고 싶었다네. 예전에 다하지 못한 음악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했음을 당신의 서방님께선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어쨌든 그대 자신에 대한 시간적, 물적 투자가 늘어가면서 그대의 얼굴 표정이 바뀌어가고 생활이 변해가고 있으니 나 보기 참 좋다네.
여칠 전,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족 신문 만든다며 집으로 들고온 과제물속에서
"우리 엄마는 앗있는 수제비도 잘 만들고 컴퓨터랑 피아노도 잘 치니까 최고예요"
라는 어설픈 글귀에 아줌마 눈물 찔금 거리며 적잖게 감동을 받더구만.
숙이 아줌마!
이런게 아닌가 싶네.
인생의 주인공이 그대이거나 그대가 아닌 다른 가족들이거나간에 자신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 결국엔 그대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보다 충실하게 되고 또한 작은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네.
숙이 아줌마!
그대의 감춰진 공간을 이제 펼쳐 보이기 시작했으니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잘 다져나가서 서방님과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무엇보다도 그대 자신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멋진 여자가 되길 바라네.
그리고 아줌마!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는데,
내일은 제발 휘청거리는 옥수수 뿌리 위에 흙 좀 수북히 덮어주게나.
차일 피일 미루더니, 결국엔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지 않나.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