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아들아이의 군입대 시켜놓고
울산에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발차시간은 밤 9시30분
그렇게 혼자 앉아서 녀석의 긴 여운을 곱씹으며
서울까지 6시간을 여행하리라
작정을 하고 6호차 53번 창가자리에 앉았다.
마침 옆자리엔 노인도아닌 아저씨도 아닌 남자가 앉았고
그 사람은 앉자마자 고개를 통로쪽으로 휙꼬고는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기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또 칠흙같은 창을 보며 아들아이의 뒷모습을 각인하려 애쓰다
미련한 에미는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나 잤던가...
잠결인지 꿈결인지 너댓살 의 여자아이의 목소리와
아주 다정함이 넘쳐흐르는 아저씨의 주고받는 얘기소리에
잠이 깼다.
그래서 보니 나의 건너편 다음 좌석에 앉은 여자아이와
내쪽좌석의 맨 끝쪽에 앉은 45-46세쯤 되어보이는 남자가 그 여자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20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것은 재미있는 이야기소리가 아니라
남의 단잠을 깨우는 뭔가 거슬리는 소리였고
나중엔 짜증이 나서 언제쯤에 저 들의 대화를 중단시킬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난 안그래도 공중도덕을 상실한 사람을 보면 못참는데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걸어놓고 있는데 바로 그때 아이의 뒷 좌석에
곤히 잠자던 중년 아저씨가 일어나더니
"여보시오 지금 다들 잠자는데 좀 조용히 해 주시지요..."
그러자 금새 쉿 쉿하며 조용해졌다.
그러고나니 잠이 다 달아나 버렸고 이런 저런 생각에
군입대 시킨 아들생각에 가슴이 아려와서 코끝이 시큰해온다.
이렇게 혼자 상념에 잠겨있을때 였다.
정말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렸을때
난 어이없는 광경에 정신이 퍼뜩 드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것은 ...
그 남자 즉 여자아이하고 얘기하던 그 남자가
그 아이의 뒷좌석에와서 통로쪽으로 머리를 두고
벌렁누워있었다.
참고로 모든 열차는 종착역이 가까워오면 좌석이 거의 빈다.
다시 본론으로
그렇게 누워서 한손을 뻗쳐있고 한손은 사타구니에 얹혀있었다.
더 가관인것은 세상에 그 여자아이가 어느새
그 남자의 뻗친 손위에 걸터 앉아있는게 아닌가..
난 가슴이 두근두근 뛰면서 계속 눈을 땔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그 남자손에서 내려 왔다가
다시 올라가고 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뭔가 이상한지 아이는 그 남자의 손을 치마속에서
빼면서 (치마를 입었씀) 자기자리에서 만 아저씨랑 얘기했다.
자세히 보니 그 여자아이의 부모는 농아부부였고
모든 얘기는 수화로 하는 것이었다.
물론 아이도 부모와 수화로 대화했다.
난 은근히 걱정을 했다
저 남자의 행동을 얘기해 줘야하나
아니면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나...
하지만 모든일이 결과가 중요할진데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것같았다.
그래도 한번만 더 그런 행동을 하면 한마디 해줄려고
벼르고 있을때 그 여자아이의 부모는 수화로 무언가 말하더니
짐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수원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렸다.
그 남잔 자는척하며 나의눈을 피하며 누운자세 그대로 서울역까지 같이 왔다.
참 오래 살다보니 별의 별인간들을 다 보겠다.
내 생각엔 그 음흉한 남자가 그 아이의 보모가 농아라는 사실을 알고 그런 짓을
한것같았다.
증말 세상엔 아주 졸렬한 인간들이 살아 돌아 다닌다는것에
한탄을 금할수 없다.
이렇게 난 내 아들 군에 보내면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런 더러운 인간땜에 흥분돼서
새벽3시 30분에 서울역 에 마중나온 남편과 함께
씩씩거리며 집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