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외국생활이 아주 체질에 맞아 좋겠다 좋아' 하면서 말다툼을 했던 시간이 벌써 칠년이 흘렀다.
태평양 한 가운데 지도상 작은 점으로 밖에 표시 할수 밖에 없는 조그마한 섬인 이곳에 처음 우리가 왔을때 난 너무 좋았다.
일단 한국의 복잡한 시집 식구들하고 관계를 선심쓰듯 어쩌다 하는전화 한 통화가 말끔히 전화비 많이 나오니가 자주 하지마라는 염려로 해결할수 있고 또 전쟁터 같은 학교를 떠나 우리아이들도 새로운 시스템속에서 공부 시킬수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난 너무 나날이 행복햇다.
그러나 우리 남편은 일년 삼백 육십 오일이 연 기온차 일도로 삼십을 윗 돌아 쪄대는 날씨에 자긴 "서리 맞은 풍성귀같아고 정말 견디기 괴롭고 부모 형제를 떠나니 외로워서 살기가 힘들다고 했다.
듣기 좋은 꽃 노래도 한 두번 들으면 싫증과 짜증이 나 듯 난 결국 남편 한테 " 어차피 타국에 왔으면 여기에 정 붙히고 살 샐각을 해야지 맨날 허구헌 날 불평만 하다" 고 핀잔을 주어 결국 말타툼이 일어나곤 했다.
이래저래 우여 곡절 끝에 오늘 이 시간까지 살면서 전세는 점점 남편쪽으로 기울고 있다.
남편은 지금은 한국에 가면 답답하고 정신이 없다고 한다.
난 올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마자 유월 초 아들 둘 데리고 고국에 나갔다.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서 한국말도 가르치고 또 경험하지 못햇던 여러가지를 경험할수 잇는기회를 주겠다는 깊은 뜻을 가지고.
계획데로 두 아이들은 이런 저런 공부와 북한산 줄기를 타고 흐르는 계곳에서 사촌들과 신나게
물고기, 개구리,장수 하늘소 심지어는 두더지 새끼까지 잡아 보는 횡재를 누리는 방학을 보내고 있는 사이
난 그만 한국의 새로움에 흠뻑 빠져 버리게 되었다.
우리들이 잠시 둥지를 틀고 잇었던 곳이 시누이 집인데, 북한산이 바로 코 앞에 있는 의정부 회룡골이다.
유달리 비가 많았던 올 여름의 특혜를 톡톡히 받아 아침 저녁으로 펼쳐지는 구름들의 끝없는
향연은 나에게 무한한 소녀 같은 감성을 심어주고 창을 타고 넘나는 드는 바람은 새로움으로 가슴을 출렁이게 만들어주엇다.
아침마다 모두 다 나가고 혼자 햇살을 덮고 누워 책을 읽는 그 평안함과 여유로움
"이게 욕심내지 않는 조그마한 행복이구나" 하는 작은 울림이 마음에서 들려오곤 햇다.
아이들만 공부하라고 할수 없고 삼십의 마지막을 멍하니 보내기엔 너무 억울해
동화구연도 배우고 문화센터도 기웃거리고 또 비어있던 파출소를 개조한 어린이 전용 관인도서관의 여름방학 특별 프로그램의 하나인 영어 동화 읽어주기 자원봉사등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보냈다.
배움이란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들에게 새로움을 주고 도전할수 있는 힘을 주어 또 다른 살아잇음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어 너무 좋앗다.
그런데 가지말라고 해도 시간은 가고 즐거운 시간일수록 더 빠르게 흘러가는것.
긴 두달도 꿈결같이 보내고 여기 다시 작은 우리집에 돌아오니 내집이라
편안함은 있지만 고국땅에 놓고 온 여러가지 향기들이 아직도 코 끝에 맴돌아 자꾸만 허방에 빠지는 어지럼증을 느끼곤 한다.
요즘 이런 나를 보면서 처음 와서 느꼈을 내 남편의 심정이 어땠을거라는게 조금은 이해가 된다.
물론 한국에 계속 살아야 한다면 떠난자 들이 부러울때도 있겠지만 지금 현재는 내 조국에 가서 살고 싶다.
특히 가을의 초입인 지금 이시간들엔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