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무지 더운날이다. 입추가 지나가고 말복이 갔는데 여름의 끝은 더 질긴 끈으로 하루를 동여매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의 끝은 이렇게 질기고 모질어야 하나보다. 죽어가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과 정을 끊기 위해 독설을 퍼붓기도 하고 마음에 없는 생뚱한 소리들을 쏟아내어 얼굴을 돌리게 한다고 하질 않는가. 그렇다면 아직 나의 얼굴은 그를 보내기위한 모습이 아니다. 그를 향해 욕설을 퍼부어내다가도 막상 얼굴을 대하면 안스럽고 측은해지는 건 왜일까. 그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는 말일까. 체에 받혀진 꽁꺼플같은 삶의 찌꺼기일거라고 좋은 말로 하자면 미운정고운정이라고 해야할까. 어찌되었든 그 이상한 연민을 살을 베내듯 도려내고 싶은데 나는 아직도 그것을 할 수가 없다. 평생을 이렇게 연연해하다 무채색의 아득함속으로 나를 정의하지 못하고 누울려나보다. 그것도 어쩌면 내 팔자려니 팔자탓을 해보기도 하다가 거칠게 도리질을 한다.
시나브로 여름은 끝날것이다. 그것이 언제든 계절은 어김없이 오고 그리고 가을은 또 어느 아침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내 어깨에 와 기댈것이다. 세월을 거부할 수 없듯이 나는 또 내 나름의 삶의 방식으로 그와 부딪힐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이 하루가 오로지 내 몫의 삶이라는 것, 내가 책임지고 내가 결단하고, 내가 이끌고 나가야한다는 것을 절감해야 한다. 그래서 이 여름의 끝이 빨리왔으면 싶다가도 한편 새로운 계절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언제나 시작은 새로산 설빔처럼 뭔가 편하지 않고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내 삶은 안주쪽으로 늘 기울었다. 그리고 이제 마흔의 어느 날 나는 독립을 선언하고 새로운 항구에 닻을 내렸다. 주위의 모든 것이 내게 생경한 등이다. 아무리 두드려도 돌아보지 않을 낯선 이의 등.
선풍기가 좌우로 하염없이 돌고 작은 창으로는 끊임없는 도시의 소음들이 백열등에 달라붙는 날벌레처럼 악착같다.꿈. 어린 시절 한 낮의 여름 장마비속에서 느꼈던 천둥소리.모든 것들이 현실이 아니라 환상같기만 한 나의 마흔. 가도가도 끝이 없는 터널속같은 나의 마흔은 언제 끝이나려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