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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퇴근하는 남자


BY 쟈스민 2002-05-23

얼굴 마주하고 함께 밥을 먹어본지가 언제인지 ...
이젠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시간이 되면 가장이 돌아오지 않아도 아이들의 배꼽시계에 귀기울여
밥을 차린다.
그럴때마다 그의 빈 자리가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이 잠들고
부산한 나의 발걸음도 지쳐 무거운 눈꺼풀 내려 놓아야 할때면
나도 내일을 준비하는 잠으로 가야만 하는데 ...
그는 오늘도 돌아올 줄 모른다.

마음은 늘 그가 오고 나서 잠들고 싶지만,
하루 이틀도 아닌 계속되는 생활이니 몸이 따라주질 않아
깜박 잠 들다가 그를 맞아들이기가 일쑤이니 늘 미안한 마음이다.

지친 어깨를 늘어 뜨리고 40대의 가장은 그렇게 늦은 밤
가족들의 잠을 깰까 싶어 살그머니 문을 연다.

남들이 놀러가기에 좋은 날이면 으레껏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행사장
가는 곳곳마다 남들은 즐거운 놀이에 빠져 있을때에도
그는 어디에선가
가족들의 얼굴 떠올리며 땀을 쏟고 있을 것이다.
하는 일이 그러하다 보니 주말에도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늘어가는 통장 잔고만큼 행복해지는 것 아님을 잘 알면서도
섣불리 놓지 못하는 삶의 애착도 살아있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겠지

그런데도 잠결에 바라보는 피곤에 지친 그의 얼굴은 왜 그리도 서글퍼 보이던지
잠을 자다가도 마음 아파지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이들에게 쏟아야 할 내 손길은 바쁘게 돌아가고,
자고 나면 돌아가야 할 나의 일터가 새삼 소중함으로 다가선다.

사는 것은 어차피 명치끝 아릿한 아픔을 언뜻 언뜻 느끼기도 하는 것일게라고 ...
혼잣말처럼 자다 일어나 중얼거리기도 하는 걸 보면
가도 가도 아득한 것 같기만 한것이 삶이기도 한 게다.

새벽에 퇴근하는 남자 ...
아이들이 보고 싶어하는 아빠로 살아가는 40대 가장의 어깨에는
요즘 부쩍 치열한 삶이 걸려 있음이 보인다.

나도 남들처럼 제 시간에 퇴근하는 남편을 반가이 맞아 주며,
온 가족 둘러 앉은 밥상을 차리는 소박한 삶을 살고 싶은데...
내게 주어진, 내게 예정된 삶은 그런 모양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대본을 소화해내는 어설픈 배우라도 된 것만 같다.

어디에선가 거나하게 한잔 걸치느라 늦어지는 새벽의 퇴근은
아마도 아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테지만
그의 새벽 퇴근은 늘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럴때마다 난 사는게 무엇인지 ...
를 외쳐 대며, 여기저기 벗어둔 속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긴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내가 해 줄수 있는 것이라고는
끝까지 믿고 지켜봐 주며 기다리는 것이란 걸 모르지는 않지만
무엇인지 모르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은
아마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조금쯤은 비켜선 듯한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최근 들어 몸무게가 몇 키로나 빠졌다고 웃음섞인 말투를 장난스레 건네며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한다는 그가
안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참 멋져 보인다.

가야할 목표가 있고, 아직은 꿈이 있는 40대
고단하고, 서글픈게 삶이라지만
그래도 그럴때가 좋은 때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도 그르지 않음을
믿고 싶기에

난 오늘도 새벽에 퇴근하는 남자를
기다린다.

그의 땀과 열정이 결실되어 열매맺을 찬란한 미래를 향하여
손잡고 달려가야 할
우리는
한 가족이기에 ...

아이들의 해맑게 잠든 얼굴이
가장의 얼굴에 드리워진 삶의 고단한 그늘을
조금은 걷어내 줄 수 있을 것 같은지
아이들의 방을 조용히 다녀가는 아빠의 입가엔
그래도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새벽에 퇴근하는 남자
그의 퇴근시간이 조금씩 빨라지는 날
소박한 밥상을 차려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어서 내게로 왔으면 하는
나의 바램을 곱게 접어
오늘도 이른 출근을 서두르는 그의 셔츠 주머니에
나만이 알게 감추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