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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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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위하여


BY 가인 2001-04-18

이른 아침 바쁘게 잠을 깨웠습니다. 마음이 자꾸 조급해집니다. 잃게 될까봐.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급한 마음에 부리나케 조깅을 시작했습니다. 자갈과 굵은 흙더미들이 잔디에서 밀려나와 운동장은 심하게 파헤쳐져 있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심하게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식은땀이 나고 허리를 펼수가 없어져서 겨우 두바퀴를 돌고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습니다. 예전의 나로. 발랄하고 자신감 넘치고 또 과격한 나로. 이제부터 내 몫을 찾으리라. 좀 이기적으로 살리라. 시간의 괴리감은 이미 내 몸속에 모든 구조와 감각을 바꿔놓고 말았더군요. 지방이 많이 낀 피로는 더이상 지탱하기가 힘이 들어. 빈혈과 수면부족과 만성피로와 이런 구질구질한 병명들로 나는 이미 얼룩져 있으니.

서슴치 않고 내뱉던 잔인한 남편의 목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나를 앗아가버린 사람들의 잔악함은 내 영혼을 암흑으로 끝없는 나락으로 이끌고 가 버렸나 봅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숨쉬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멈추고 싶어서 하루를 견디기가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한없이 밀려드는 허무감과 이유없음과 주제없음과 나를 밝히고 싶지 않은 시간들을 다 버려 버리고 싶었습니다. 나를 완전히 죽여 버렸었습니다. 내 안의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서 말을 할수도 또 귀기울일수도 단 한글자의 언어도 나와의 대화를 허락하지 않았었습니다.

"많이 피곤하십니까."
"....."
"좀 쉬셔야 겠습니다.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되었군요. 많이 힘든가보죠."

' 그래요. 저 죽을것만 같아요.' 이런 말이 내 가슴속에 울려왔습니다. 기대고 싶고 붙잡고만 싶어진답니다. 안그러면 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모두가 모든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귀찮고 피하고 싶은 존재였지요.

너무 긴 겨울은 또 그만큼의 환한 따사로움으로 내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있군요. 날 사랑해 주세요. 날 위로해 주세요. 차가운건 정말 싫어요. 이제 푸른 실록과 그 젊음의 싱그러움을 저에게도 좀 나눠주세요. 나를 흔들고 가는 당신의 바람으로.

나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