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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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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


BY 27kaksi 2003-08-19

조용필의 노래에' 여행을 떠나요 '라는게 있다.

노래방에 가면 일행중에 누구라도 한사람은 그 노래를 꼭 부르곤한다.

그만큼 도시의 생활은 늘 여행을 꿈꾸게 만든다.

목요일 저녁(14일) 통닭한마리에 생맥주를 아빠랑 둘이서 먹다가,

내가 남해 보리암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작년 겨울에 갔던 그곳이 너무

좋고 인상에 남아있어서 기회가 있으면,

늘 다시한번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오늘이 바로 그날 이었다.

그는 당장 짐을 싸라고 말했고 난 신나게 가방을 챙겼다.

대전오빠에게 전화하고 논산언니에게 전화하고, 어른들은 나의 아기

같은 행동에 동조를 해주어서, 서울을 출발한 시간은 밤 9시30분,

신탄진 부근에서만 휴가 차량으로 차가 좀 막혔고 우린 자정이 넘어

대전에서 어른들을 픽업했다. 갑자기 왼 도깨비 같은 짓이냐고

하면서도 어른들도 재미있다고 하셨다. 새벽 3시 쯤에

함양의 소도시에 첫날의 여장을 풀었다. 우연찮게 민방위 훈련같은

여행이지만 모두 즐거운 여행이 되길 기대하며....

다음날,
일찍 서둘러서 찾아간 함양의 우체국 있는 부근의 '칠구식당'의 콩나물

국밥은 아주 맛있었다. 경상도 음식답게 좀 짠듯한게 흠이었지만.....

푸른숲과 반짝이는 햇볕! 여행은 늘 영양제를 먹듯 활력을 준다.

남해대교 쪽보다 훨씬 빠르고 경치도 좋다는 오빠의 안내에 따라

개통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삼천포 대교'엘 갔는데,

세개의 다리로 연결된 상당한 규모의 다리는 조각조각 떠있는 작은섬

과 가까이보이는 남해의 산을 품고 앉아 있어서 절경이었다.

잠깐의휴식과 기념촬영을 하고,

그다리를 지나 남해로 들어서니 섬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부둣가 횟집에서 -한밭 식당 이란 간판을 보고 고향 사람이라고 들어

갔더니만 절에서 스님이 지어준 간판이랬다- 점심으로 생선회를

포식을 하고, 남해섬을 끼고 도는 아름다운 순환도로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드라이브코스 였다.

이런길을 운전을 하는건 행운이다싶었다 난 그길을 어른들을 태우고

. 요즘의 복잡한 문제들은 잠시잊고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므로, 또 건강하므로 이시간이 있는것이니까.....

남해의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작은 섬들을 옆에 다정히 끼고

조용하게 흐르는 물을 보고 있으면 모든것을 잊을 수 있을 만큼...

간간히 쉬는곳에서 경치도 보고 음료수도 마시며 생활의 때를 씻은 우리

에게, 상주 해수욕장의 차를 댈 수 없을 정도의 인파는 실망을 안겨

주었다. 막바지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들은 대단 했다.

결국 보리암을 먼저 가기로 하고 그곳을 차를 달렸는데 그곳도 역시

진입로 부터 줄을 서고 있는 차들은 주차장을 방불케하고, 차의 꼬리에

붙어 있다가 다시 상주 해수욕장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주차장을 겨우 들어가서는 끝에다 차를대고는 유명하다는 모래사장을

들어갔는데......

겨울에 보았던 그 하얗고 고운 모래사장은 완전히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고, 모래가 뜨거워서 무좀을 죽일정도라던 소문과는 다르게,이미

찬바람이 부는 탓인지 차가워서 발이 시려웠다.

짜장면도 배달을 해준다는 소나무밭에서 우린 다섯이 멍청히 앉아

공해로 찌들은 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

관리 하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도 모두 함께 반성해야하는 현실!

아름다움은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면 좋을텐데......

우린 너무 공중 도덕에 무심해 있고 이 아름다운 곳은, 실망스럽게도

쓰레기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씁쓸한마음으로 다시 차를 돌려

보리암으로 향했다.

우린 천신만고-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끝에 보리암에 어둑해져서야

오를 수 있었다. 저녁 예불이 시작되고 낭낭한 스님의 독경 소리가

낭자하게 산위 저녁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오빠랑 언니랑 한씨 끼리만, 이성계가 기도를 해서 임금이 되었다는

기도하던곳에 갔었다. 이성계는 그곳에서 기도를 해서 임금이 되었다

-는데 우리는 세사람이 모두 자기의 기도를 했다. 서로 정확하게 알 수

는 없지만 남매의 기도가 이루어져서 세가정에 모두 좋은 일들만 있었

으면 좋겠다. 이성계는 임금이 되면 이산을 금으로 덥혀 준다고 장담을

했는데 막상 되고 나니 금을 그렇게 구할 수가 없으니까 머리 좋은 신하가
이름을 금산이라고 하면되지 않느냐고 해서 이름이 금산이 되었다고

오빠가 말해주었다. 팻말은 200미터 라더니 길이 험하고 멀어서 땀을

흘렸다. 등산을 요즘은 하지 않은 탓이지...

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가버렸으니 한참이나 걸어서야 차를 만나고

산을 내려오니 이미 어둠이 내린 후였다.

광복절이며 절기로 말복이니까 건강식을 먹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져

남해 시내에서 꼭 한집 있다는 영양탕을 하는 집을 찾고 찾아가고

식사후에,

예전에 남해대교밑에 넓은 숙소까지 찾아간 우리는 이미 만원이 되어

버려서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니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국 하동 시내까지 갔고, 가는곳마다 그곳 학교의 총 동창회를 한다고

작은 도시가 온통 시끌벅적 하고 여관은 모두 만원이랬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하동 시내에서 길에 있는 경찰에게 여관을

물었던 우린 의외의 친절한 경찰을 만나 광양 방향의 한적한곳에 있는

하얀성이란 모텔에 둘째날의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친절에 익숙하지 않고 살아왔던 우리는 그경찰의 오버하는듯한 친절에

특히 형부는 감격해 하고, 꼭 인터넷에 올리라는 형부의 요구에 따라

참고로 그 경찰의 이름을 남겨야 할것 같다.

(하동 경찰소 읍내 파출소소장 경사 조영남) 그분은 경상도 말로

모텔에 전화까지 해주고 가는길까지 안내하고는 중간까지 에스콧트도

했다. 민중의 지팡이 이고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

이니 그 정도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늦은 시간에 우린

깨끗한 모텔의 특실에서 잘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다음날은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시골길은 나름대로 낭만이 있다. 특히 비가 내리는

섬진강은 정말 길고 다른강과는 좀 다른느낌이었다.

왼쪽으로는 산을 끼고 오른쪽으로는 벗꽃나무길을 낀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섬진강은, 표현할 수 없는 고즈넉함과 말 수 적고 품위있는

소박한 여인네를 보는듯 유유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오는길에 조영남의 유일한 히트곡으로 이름이 난 '화개장터' 에 들렀다.

본연의 옛날의 정취를 기대 했는데, 너무 상업적인 시장으로 변해있어

서 실망을 했다. 흔히 보는 장날의 분위기로 음식장사만이 북적이는

곳이지만 기념이라고, 우린 재첩국이랑 재첩 파전이랑 은어회를 먹었다

여행을 해보면 그래도 경상도가 인심이 좋은것 같다.

아줌마들의 말씨도 애교가 있고, 배가 부르니 맛만 보겠다고 만원어치의

은어회를 달라니, "얼마 안되는데예" 그러더니 네마리의 은어를 쓸어

왔다. 수박냄새가 난다는 은어는 나같이 회맛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맛이 그맛인 물고기더라만......

전라도로 들어서서 전주에서 아빠가 생각해낸 덕진공원엘 갔다.

이번 여행의 보너스인 셈인데, 그곳에서 연꽃을 볼 수 있었다. 큰 규모의

연꽃밭은 이미 꽃이 지어서 연밥이 나온것과 지금 피어 있는 그림같은

꽃과 수줍은 처녀같은 연꽃 봉우리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예뻤다.

큰호수의 반은 오리배를 타는 연못이고, 반은 연꽃밭인데, 중간에 길게

이어지는 두개의 다리와, 관광객을 위한 연꽃밭을 가로지르는 관광용

나무다리는 몇번의 탄성을 내기에 충분했다.

연꽃은 종이로 만들은 것처럼 예쁘고 연잎은 구슬을 매달고 건강하게

자라있었다. 지름이 80에서 90이라니 아이들이 우산으로 써도 비를 안

맞을 정도 였다. 난 처음으로 그렇게 큰 연꽃밭을 보았는데-언제부터

보고 싶어 했었다- 아주 감격 했다. 그런 아름다운 공원을 도시에 갖고

있는 전주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언니네 가까이 올 수록 산이 없기 때문에 하늘의 노을이 구름과 어울려

바다를 보는듯이 고왔다.

언니 부부를 내려드리고, 오빠와 셋이서 계룡대에서 멧돼지 고기로

포만한 저녁을 먹었다.

어리광이 많은 나는 나이 차이가 나는 오빠에게 속에 있는 얘기를

하게되고, 기분파인 오빠랑 우리부부는 음주 탓으로 헤븐이라는 모텔에

셋째날의 여장을 풀 수 밖에 없었다.

난 세상에 나서 제일 많이 먹은 탓에 아빠에게 좀 추태를 부린듯........



사랑하는이여! 슬플때나 기쁠때나 언제나 이해하고 감싸주며 살겠다고

우리 결혼식날 당신은,'녜'하고 대답했으니까 나의 허물을 이해 해

주시던지 아니면 모두 잊어주시구려, 술취하면 무슨짖을 못하냐는 말도

있잖아요.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