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군필후 4년동안 복학 신청을 안해 학교에서 아예 제적이 되어있기에
편입시험을 치던지 새 학교에 다시 입학 하는 형식으로 해야 된단다
그렇게 되면 돈이 이만저만 드는게 아니란다 어쨌던 되는 방향으로 할 수
있는길을 찾아 보자면서 하고는 포기할까 하면서 그러면서 직장에 사표낸걸
후회하는 눈치다.
용기내세요. 할 수 있어요.내게 돈이 좀 있거든요.그러면서 서울서 함께
복학을 위해 힘써주신 시아주버님의 편지를 내게 민다.
제수씨가 어렵지만 동생의 힘이 좀 되어 주세요.
훗날 서로를 위해서라면 이라는 사연과 필요한 돈이 당장에 45만원
이란다. 속으론 무척 놀랐다.한학기 사립대학 등록금이 칠만원
이라는걸 알았을 때다방전세를 빼고 있는돈 없는돈을 끌어모아
45만원을 장만해 주면서 남편이 잡 생각없이 학업에만 노력 하도록
빌면서 나는 대구에 남편은 서울생활이시작됐다.
그 돈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남편은 2달 후 당신을 위해 최선을
할테니 몇만원만더 좀 보내달란다. 사표는 내라고 했고 지금으로선
이자를 쓰더라도 남편을 위해서돈을 빌려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시동생의 행정고시 합격 소식이 직장 사무실 전화로 오고
각 신문마다 실려있어 새사람 맞고 3년 동안 아무 탈없어야 집안이
편하다는데 4달만에 날라온 낭보는 나로서는 또 어떻한 삶의 희망을
보여 주는것같애 친정엄마께 전보를 쳤다.
엄마는 딸이 시집가서 좀 힘들지만 사가댁 경사에 온 집안에 자랑
하면서 좋아하셨다.
힘들게 공부하는 사위도 같은 학교 다니는줄 아는 어머니께선 사위도
그렇게 되리라 믿고 늘 격려 해주셨다. 중매한 시누는 기세가 등등해
시가댁 자랑을 하면서 내가 시집을 아주 잘 갔다고 주위에 알린다.
나도 싫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얼마만한 돈이 더 들어갈까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서 맘 고생이 되어 돈을 신랑이 요구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때 부터는 남한테 조금씩 빌리기 시작했고 내 혼자의 생활비는
월급의10%도 안썼다
웬만한건 친정엄마가 해주셨다. 그럭저럭 5십만원이 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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