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은 언제부터인지 내게 하나의 바다였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창으로 다가가 몸을 기대고 서서 창밖 풍경에 젖는다.
창밖에는 놀이터가 있다.
도시의 아이들은 늦게까지 그곳에서 뛰고 놀았다. 아니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그곳을 나름껏 활용하고 있었다. 놀이터에 언제부터인지 한 노인이 살고 있다. 한 낮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는 곧 돌아와 다시 벤치위에 이불을 깔고 눕는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미 그 노인의 존재에 대해 익숙해져 있는 듯 하다.
창을 통하여 나는 이 도시에 길들여져 간다.
놀이터를 에둘러싼 플라타너스는 수령이 꽤 된듯하다. 둥치가 한 아름은 너끈히 될듯도 하다. 플라타너스는 잎이 넓다. 그 널다란 잎이 바람에 흔들릴때면 나는 금방 비라도 쏟아지려나 싶어 얼른 창으로 달려가곤 한다. 이곳의 가로수는 거의 플라타너스다. 항상 이곳을 그리워할때는 플라타너스를 떠올리곤 했었다. 계절의 변화는 늘 플라타너스 잎에서 부터 시작되었으니까. 그 가로수 길을 따라 갈래머리 나풀거리며 도시를 헤메다니곤 했었다.
놀이터는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린다.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의 괴성과 취객들의 늦은 귀가길. 도시의 맨살이 드러나는 걸 본다. 어수선한 소음들이 그치지 않는 도시의 밤은 나를 뒤척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놀이터와 플라타너스가 있는 나의 창은 나에게 도시에서 마음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빈 터였다. 도시는 어디든 빼곡한 집들과 빌딩과 차들로 어느 곳 하나 발디딜틈없이 나를 숨막히게 만들었다.내 창아래 자리한 도심속의 놀이터는 이미 놀이터가 아니라 내게는 비상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다. 아니 푸른 파도 넘실거리는 동해바다였다.
나는 창을 통하여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