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내가 써온 물건중에 아끼는 항아리가 하나 있다
시집와서 이태 지나 분가를 하면서 시할머님께서 주신 독인데
요즘 시중에 나오는 독처럼 유약이 반질 반질묻은 빛나는 독이 아니라
그냥 두면 까만색 독이지만 물행주로 잘 닦아두면 반질해지고
겉면에 도톨도톨 돌기가 있는 넓적데데한 독이지만
그속에 김치를 담구면 얼마나 맛이나는지 요즘 나온
항아리를 몆번샀다가 김치에 군내가 나고 된장이라도 담구면
단맛보다 쓴맛이 나는 경우를 여러번 경험한 나로서는
골동품에 가깝고 한쪽 귀마져 떨어져 나가버린 이 독을
참 사랑하고 아낀것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기때문이었다
시할머님께서 물려주신 이유말고도 음식을 맛있게 발효시키는
효과까지 있어 퍽 아껴온건 사실이었다
시할머님께서 새색시 시절 장 에서 사오신 독 이 라고 하셨는데
나이는 거진 내 나이와 맞먹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할머님께서 분가할때 선뜻내주신 독이라 처음엔 셋방살이 살림에
거추장스럽게 여겼지만
분가하고 첫해
김장을 담구면서 이 독 에 동김치를 담궈봤는데 시원하고 감칠맛나게
맛이 우러난 것 이
우리집 동김치를 먹어본 친구들이 한 봉지씩 퍼달라고 해서
가뜩이나 두식구 김장인데 몆번 퍼내고 나니 진작 우리가 먹을게
없을정도로 깊은 맛 이 우러났다
손맛이 김장김치를 좌우한다지만 나는 김치를 담아두는
항아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할만치 이 독 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진주에서 20여년 살다가 부산에 오면서 아파트평수를
줄였는데 마땅히 둘곳이 없어 옹기 항아리들을 정리하게되었다
이 독은 중간 크기라 아무래도 자리를 많이 차지하게 될것 같아
가까운곳에 사시는 친정 어머님께 드렸다
친정어머님께서 독을 살피시더니 진짜 옹기라고 극구 칭찬하시더니
요즘 옹기독과 달라 이런독에 음식을 담으면 맛이 난다고
하며 그해 부터 동김치를 꼭 그 독에 담궈셨다
같은 아파트면서 어머니는 옛날 살림들을 꽤 두고 쓰시는데
옹기그릇만도 10여벌은 된다
그중 젓갈독이나 간장독,된장독,고추장독, 김치독,이렇게
나뉘어 쓰시는데 시할머님이 쓰시던 독은 겨울 내내 맛있는
동김치를 담궜다가 이듬해 봄엔 독을 우려내시고 봄멸치로
멸치젓갈을 담구곤해서 이 독이 사시사철 비어있을 틈이 없었다
작년겨울 친정집
동김치가 아주 맛있게 우러나서 한통씩 퍼다 먹곤했는데
그독을 열때마다 이젠 돌아가신 시할머님 생각이 난다
늘 손주며느리가 힘들새라 시어머님 몰래 일감을 줄여주시고
틈틈히 부엌일도 도와주셨던 시할머니
제사음식을 장만할땐 혼자서 동동대는게 안타까워
생선을 맡아서 구워주시고 나물꺼리를 다듬어주시던 시할머니
작년에 구순고개를 넘기시고 타계하셨고 지난주 일주기가 지났다
유일하게 넷 손주 며느리중에 내게 남겨주신 물건이 묵은 항아리 한개지만
먼훗날 이 항아리가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맛있는 동김치를 담궈서 꺼내먹으며 시할머니 생각을 하게될것이다
값으로 환산할수없는 유품이므로 잠시 맡겨놓은 친정집에서
곧 찾아다가 내곁에 두고 해마다 겨울이면 시원한 동김치를
봄이면 젓갈을 이렇게 나도 이독에다 사시사철
밑반찬 담아두고 이젠 돌아가신 시할머니 손길을 느껴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