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버지의 대한 내 기억은 짜증 스런 아버지의 얼굴과 위압감이 였다.
저녁 무렵 아버지가 들어 오시면 웬지 불안 했고 불편 했다
뭔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집에 오셔서 안방을 차지하고 계시다 ""누구누구야...발바닥 긁어라""하면 그날 호명된 한사람은 죽지못해 빗을 들고 아버지의 양말을 벗기고
아버지가 깊이 주무실때 까지 발바닥을 긁어야 했다.
아버지와 돌아가신 엄마는 지금 돌이켜보니 맞는 구석이 한군데도 없는 친해질래야 친해질수 없는 너무도 다른 성격의 소유자 였다.
아버지의 성격은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일도 주먹 구구.. 심도 흐리고 ..
게다가 고집불통에 남들한테는 지나치게 잘하는 희한한 성격이셨다.
한술 더떠서 아들 선호사상이 강한 아버지는 딸들과 먹는거부터 차별 하신 분이셨다.
내밑에 세살 아래 남동생은 자타가 인정 하는 미남이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송승헌이나 잘생긴 톱 스타들을 능가할만한 보기드문 미남인데다
아들이였으니 아버지의 차별은 너무도 당연한거였다.
먹을게 넉넉치 않았던 시절 국수와 라면을 반반 석어 끓이면 국수는 딸들 차지 꼬불꼬불한 라면은 당연히 아들들의 차지였다.
어쩌다 엄마의 실수로 들어온 내 양재기의 들어온 서너개의 꼬불꼬불한 라면을 젓가락으로 살짝 말아 입에 넣으면 밋밋한 국수와는 다른맛인 고소함과 느끼한 맛이 입안에 돌면서
오빠나 남동생의 양재기에 한없이 눈이 가곤 했다.
카스테라의 아픈 기억.
그날은 늦여름 오후 땡볕이 마루아래 도끼다시 봉당 위에 내리쬐는 짜증 나는 날씨였다.
우리 시절엔 먹을것이 풍부하지않아 늘 배가 고프고 허기질때였다.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남동생과 나는 오후에 따가운 햇살을 피해서 담밑 그늘에서 놀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 나갓다가 오시는 길이였는데 둘이 놀고 있는 남매를 향해 손짓을 하면서 동생을 부르는 아버지의 손에는 노란 둥근 카스테라가 들여 있었으니.
아버지는 잘난 아들을 살짜기 불러 카스테라를 손에 쥐켜주면서 "혼자 먹어라..""하시곤 안방으로 들어 가셨다
늦여름 오후에 저녁 지을 무렵이니 그 어린 여자아이는 얼마나 그 노란 카스테라가 먹고 싶어을까.
동생의 입에 점점 없어져가는 노란 카스테라에 보드라움이 마치 스폰치 같은 느낌일거라고
나는 스폰치를 상상하며 엄지 손가락만큼이라도 동생이 떼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담밑 흙을 만지며 눈은 동생의 손만 바라만 보아야 했다.
그리고 불혹과도 멀어지는 이나이가되어도 카스테라에 기억은 생생히 살아 있으니
마트에 옆에 제과점을 지나치면서도
노란 카스테라에 눈이 가고
스폰치만 보아도 그날의 카스테라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30년도 훨씬 넘은 담밑에 여자아이가 생각나는 씨잘데 없는 별걸 다 기억 하는 여자인것 같다.
아버지의 발바닥을 제일 많이 긁엇던 나는 그것도 유전인지.
두아들들 한테 삼백번만 아니아니 200번만 긁어조..하면서 빗을 강제로 아들들의 손에 안겨 준다.
어릴적 아들들은 어린마음에 팔 근육 생길거라는 나의 꼬드김에
오백원 준다는 유치한 에미의 유혹에 잘도 넘어 가 지 에미의 발바닥을 긁어주곤 했는데
지금은 택도 없다 .
더 우스운건 친정 어린 조카들도 어림에도 불구하고 발바닥 긁어 주거나 온몸 밟아주기게
달인이되어 지 포항 고모가 가서 '"긁고 밟아라...""하면서 댓자로 엎어져 있음
그동안 지 아버지들에게 시달려온 갈고 닦은 솜씨를 화려하게 발휘가 된다..ㅎㅎㅎㅎ
암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노란 카스테라와 발바닥 긁키면서 코골고 주무시다 모르시는줄 알고 글던손을 멈추고 빠져나가려는 찰나 아버지는
발바닥을 꼼지락 거리면서 안잔다는 신호를 보내는 아버지가 기억날뿐이다..ㅎㅎㅎㅎㅎㅎ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