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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삶의 이야기(17)


BY 영광댁 2001-03-04


진희(1)

길게 자란 머리를 자르고 진희네 집에 간다.
계절 바뀌었으니 한번 다녀가라 전화가 왔다.
진희는 나보다 세 살이 더 많은 언니인데 나는 그냥 진희야,진희야 이름을 부른다.
어쩐 일인지 진희라는 이름이 그렇게도 좋다.
중학교때 읽었던 한 소설에서 진희라는 이름이 나왔는데, 진희가 실성한 사람이였던가,
해방 전후로 공부를 많이 한 여자였는데 사랑 때문에 그런 것도 같고 스토리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진희라는 이름만 항상 살아 있었는데,늦게 시작한 직장에서 진희를 만났다.

아침에 야채 아저씨한태 산 귤을 조금 싸들고 버스타고 전철타고 도착하니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진희야, 잘 있었니?
"그래 잘 있었다. 너도 잘 있었냐" 한다.
손도 안 씻고 주방으로 가서 가스렌즈 위에서 끓고 있는 음식물들의 뚜껑을 차례차례 열어본다.
"그러다가 침 떨어진다.우선 앉어라, 해도
"우와 신난다.오늘 내 생일이다. 한 소리를 하고...

"자. 우선 먹어 배고프지"
진희언니가 엄마처럼 밥상을 차려준다." 어서 밥먹어라".하는 소리를 들으면 울컥 눈물이 솟아 오른다.(그런 다음엔 어서 먹고 학교가, 지각 하겠다.라는 말이 절로 이어질 것 같고... 세월이 지나 나도 이젠 애민데, 나는 더 엄마 옆에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생각하면 너무 일찍 엄마곁을 떠나왔던 것 같다.내 의식속의 나는 오래도록 더 엄마곁에 머물러 서 있을 것만 같다. 이제는 병이 들었고 오라버니의 두아이들 키우는 어머니 옆에서 아무말 없이)

"우리집에 과일 많은데 뭐하러 가져왔니.? 아이들이나 멕이지" 한다.
피아노 위에 이 문열님의 아가가 놓여있다. 화초들이 창문을 덮었고 길게 잘 자란 러브젤이 미니 달개비가.청와대 뒷편에 자리한 북카페보다 더 예쁘게 자라 있다.
새옷 하나 사주지 못하고 우리 아이들 옷만 챙겨줘서 어쩌니 한다.성당에 다니는 진희가 우리 아이 보다 조금 큰 집 교우네 집에서도 가져다 세탁해 놓은 봄 여름 옷들을 펴놓으며,봐서 눈에 드는것만 챙겨라.크는 아이들 한두번만 입혀도 어디니 한다. 그래 놓고 또 미안하다 한다.자꾸 그러면 나 그냥 간다이. 엄포를 놓으면 알았어 알았어. 달래기도 한다.
쇼핑을 안다녀서 큰 종이봉투가 없는데 어쩌니 해서 보따리에다 싸라고 한다.
이렇게 큰 보따리 어떻게 가져가니.허리도 아픈데. 걱정하고.
들고 가다 힘들면 머리에 이고 가고 전철에서 자리 없으며 의자 삼아 앉아가고 집나간 불쌍한 여자처럼 보듬고 가겠다고 하고 나서 모른체 돌아서서 머리를 쳐들고 눈물을 말아 넣는다.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그 고마운 마음에 궁색한 것이 그 흔해 빠진 말이고 서로를 미안하게 만드는 것이 눈물이라니. 그러고 보면 눈물은 애물단지인가..
참 이쁜 진희.

그 보따리를 전철까지 갖다주고
이 다음에 시내 나오면 점심살게 하니 먹고 갈거다 한다.
한 지갑을 같이 쓰고 싶은 진희.
진희같은 이웃들이 가난한 나를 부자로 만들었다.
그 인정들이 내 가족을 지키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