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년지기의 친구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만난 학교동기로 짝꿍도 아니였고 별로 오랫동안 같은반을
했던 기억이 없음에도 졸업이후 우리들의 우정은 지금까지 지속이 되고
있나 봅니다.
친구네는 형제도 많았을 뿐더러 잘사는 집이여서 그때당시에도 거실에서 이층으로
올라 가는 계단이 나있고 대문과 현관사이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던 그러한 집에
살았고 공장을 하다가 망해버린 대가족의 장손이었던 우리 아버지는 형제들과
사남매나 되는 자식들과 먹고 살기위해서 식당을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더랬습니다.
자주 놀러 가는 친구네 엄마는 항상 평온한 얼굴에 인자함으로 나를 반겨 주셨고
종종 친구가 좋았던 나는 가끔씩 그애의 집에서 자고 오기도 하는 그런 사이의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더랬죠.
친구가 좋아 친구네의 분위기에 흡수가 되어 가고 있을 즈음 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친구가 친구동생을 얘기하면서
"나의 이쁜 동생 나의 사랑하는 동생"하면서 말할때 내가 의문스러워하자.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이므로 가능하면 칭찬하고 남앞에서 나쁜말로 표현하기 싫다는
것이였습니다.
고등학생이었음에도 그때 당시 친구는 벌써 내가 알지 못하는 살아감의 의미를
터득하고 있었나 봅니다.
항상 먹고 사는 것에 쪼들리던 나의 엄마는 가끔씩 내게 알 수 없는푸념을 자주 했고.
악다구니라고 할까 엄마의 흔들리는 감정에 희생을 겪으면서 자라 오고 있었고,
한살 위의 언니와는 항상 비교 되면서 살아 왔던 탓에 결혼할 연령이 다 되어 갈때
까지 자신의 모습을 모르면서 살아 왔다고 해야할까?
이러한 가정 환경은 나에게 커다란 열등의식을 남겨 주었고
세상의 처세를 익히고 열등의식에서 빠져 나오기 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 왔던 것같다.
결혼을 하고 내자식을 내 속으로 나아 기르면서 난 항상 친구의 이 위대한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생활방식을 전수 받지 않고 친구의 생활방식을 전수 받기를 택하기로 한
나는 아이들을 교육시키면서 항상 긍정적인 말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넌 할 수 있어!"
"얼마나 예쁜데"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렇게 자주 실천을 하다 보니까 생활 전체가 긍정적으로 그리고 아이들 성격또한
낙천적으로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힘이 되어 모든 생활에서 이 방식은 적용이 되고 그로 인해 긍정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친구와 내가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우린 가끔씩
서로의 살아감을 위로 하면서 크게 웃고 담소할 때가 자주 있다.
나의 삼십년지기 친구는 살아 가면서 또 다른 방법을 개발해 내고 나에게 전수 하기
시작했다.
"얘! 울 신랑 월급날만 되면 온가족이 다 모여서 퇴근시간되면 촛불켜놓고 그이를
기다린다.
그리고 남편이랑 아이들이랑 남편의 한달간의 노고에 대해서 열심히 감사 기도
하면서 그이를 격려한다! 그러면 울신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해"
친구의 또 다른 비법이었다.
이런 친구를 닮아가는 나의 모습을 그친구는 자꾸 칭찬해 준다.
"너와 같은 친구가 있어 살맛이 난다고!"
살아가면서 힘들고 부족할 때 항상 힘과 용기와 지헤를 함께 실어 보내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 존재함에 나 또한 살아감의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친구의 잊을 수 없는 향기로운 말! 말! 말!은 나의 삶의 지침이 되어
나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친구여 난 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