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어가다, 버스 승강장에서 얼굴이 눈에 익은 여고생들이 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중 한 학생도 나를 어렴풋이 기억하는지 웃으며 인사를 했다. - 하늘이 무척 맑은 날에 씀 -
문득 생각이 난 듯 ' 어머~! 체육 선생님 맞죠? '
웃으며 대답하고 나서 옆을 보니 그 친구들도 눈에 익었다.
98학년도에 5학년이었던 친구들~
큰 아들과 같은 학년이라서 더욱 정이 갔던 아이들이었다. 그해는 새로 전근 간 해였는데, 마침 그 학교의 교과담당이 자리가 비웠다길래 체육교과를 맡게 되었다. 비록 담임은 아니었으나 운동을 좋아하는 나와 체육시간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서로 호흡이 잘 맞아서 즐겁게 한 해를 보냈는 그 때 그 아이들~ 깔깔 여고생이 되어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내 앞에 있다니......
반가움 마음을 서로 나누고 걷다보니 남문시장 앞.
대학 때 친구들과 시내에서 노닐다가 가끔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반월당을 지나고 남문시장 쯤에 올때는 어김없이 우리들을 유혹하던 길 가에 있는 작은 만두가게 하나.
주인은 그 때 그 얼굴이 아니지만 그 가게 만은 옛 기억을 되살려주기에 충분했는데, 은근히 유혹하는 내 식욕은 기어이 그 집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쫄면 한 그릇을 시켜두고 기다리다 둘러본 나의 눈은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큰 액자에 눈길이 고정되었다.
한글로 쓴 붓글씨의 내용이 좋아서 끝까지 읽고 쓴 사람을 보니 또 다시 반가움에 가슴이 뛴다.
십여년 전에 붓글씨의 기초를 몇 달간 배운 적이 있는데 그 때 나의 손을 잡아서 붓 쥐는 방법에서 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셨던 김방부 선생님. 우리 집 거실 벽에 걸려있는 가훈도 써 주셨던 분!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예 연구가 이시기도 한 참으로 성실한 선생님의 작품을 이 조그마한 식당에서 만나게 되다니......
혹시나 친분이 있으신 건가 해서 주인께 여쭈어봤더니 작품을 샀다고 하신다. 하여간 뜻하지 않은 공간에서 옛 스승을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색달랐다.
그 식당 벽에 걸린 내용이 우선 마음에 와 닿고, 마치 스승님께서 바로 옆에서 내게 말씀해 주신 듯하여 그 내용을 적어서 기억해 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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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것은
평생을 일관한 일을 갖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인간으로서 교양이 없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것은
남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것은
할 일이 없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
또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거짓말 하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을 갖는 것이다.
계유년 봄에 초은 김방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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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식당 주인도 이 글귀가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으리라.(글의 지은이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우연히 만난, 지난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해 주었고,
하루 내내 가슴 속이 반가움으로 가득차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