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어나더+ 아이함께 시범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52

방학철만 되면...


BY 마음자리 2003-08-01

"너거 외숙모가..."
외할머니는 연신 부엌으로 난 쪽문을 살피며 소리를 낮추어 말씀하셨다.

"이젠 내 말도 안 듣고 오히려 날 구박한다. 밥도 때맞추어 안 주고..."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꼭 부여잡고 말씀하시는 외할머니 눈에는 눈물까지 맺혀있어, 나도 그런 외할머니의 보조에 맞추어 귀를 외할머니 입에 가까이 대고 말소리 낮추어 말을 받았다.

"외숙모 나름대로 열심히 외할매 모시던데요 뭐...일 바삐 하시다보면 때를 못 맞출 때도 있겠지요..."
부엌 쪽문에 귀를 붙이고 듣는 외숙모의 기척을 느끼며 나는 살얼음 위를 걷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대꾸를 해본다.

"그기 아이라... 니가 와 있어서 그렇지...니 없을 땐 요강도 빨리 안 비워주고...밥도 안 주고...저기 얼매나 못됐다고..."
소리 죽여 말씀한다고 하셨지만 귀 어둡고 눈 어두운 외할머니는 외숙모가 부엌에서 귀 기울이고 듣는 줄도 모르고 자꾸만 속에 담아둔 섭섭함을 모처럼 방학 맞아 찾아온 외손자 앞에 늘어 놓으셨다.

중학교에 들면서부터 방학만 되면 찾던 외가에는 외할머니와 외숙모가 계셨다.
예법을 중시하며 자잘한 정을 아끼는 친가보다는 어머니에게서 느끼는 푸근함과 따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외가가 나는 좋았다. 어쩌면 외가에는 내가 행동을 조심해야할 외할아버지나 외삼촌들이 없어서 더 편하고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순박하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외숙모가 계셨고, 친손자들보다 더 살갑게 외손자인 나에게 정을 주시는 외할머니가 계시다보니 보리밥에 짠 된장밖에 없는 상을 받아도 나는 외가가 친가보다 더 좋았다. 방학만 되면 외가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고, 매번 방학만 되면 찾아오는 외손자다 보니 나중에는 외할머니도 방학만 되면 익이가 올텐데 하며 이 외손자를 손꼽아 기다리셨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외할머니 연세는 팔순을 훌쩍 넘기셨고 큰외숙모도 환갑을 벌써 넘긴 연세가 되셨는데, 외숙모는 며느리 봐서 이젠 호강 받으며 살 연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딸만 둘 남겨두고 해방 후 혼란기에 실종된 큰외삼촌으로 인해 이십 중반에 홀로되어 갖은 시집살이 설움 겪어내며 딸 둘 키워 출가시켰지만, 외숙모 당신은 여전히 시어머니 시집살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계셨다.

나에겐 한없이 자애로운 외할머니셨지만, 외숙모에겐 여전히 지엄한 시어머니시라 외숙모가 밭일에 농사일에 바빠 조금이라도 밥 때가 늦으면 불호령이시니 외숙모인들 왜 힘겹지 않으랴...가끔 불평도 하셨을 테고 자연 일이 바쁘다 보면 시어머니 조석 챙기기에 소홀함도 없지 않았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외숙모 당신도 이미 노인 대접을 받아야할 연세였으므로...이 일 저 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외할매...외숙모 보면 할매 조석도 잘 챙겨드리고 요강도 얼른 얼른 비워드리라 할게요."
그때쯤 나도 철이 좀 든 나이라 이 경우 저 경우 살피며 외할머니를 달래본다.
"그러니 외할매도 외숙모한테 먼저 역정부터 내시고 그라지는 마이소..."

"내가 무슨 역정을 내...지가 역정을 내지...나는 안 낸다..."
약간 섭섭함이 풀린 외할머니는 당신이 하신 일에는 얼른 발뺌을 하신다.
"아까도 보이 외할매가 먼저 점심 안 챙겨준다고 역정 내시던데요 뭘~"
빼는 발을 조금 잡아 보았더니...
"어데~ 그땐 니가 배 마이 고푸까봐 내가 그랬지..."
얼른 발 잡은 내 손을 내 쪽으로 털어 내신다.

"할매...큰외삼촌 어릴 때 총기 있었던 이야기 좀 해주이소~"
외할머니가 제일 해주기 좋아하시는 이야기. 화제 돌리는데는 딱이다.
"너거 큰외삼촌이 어릴 때 이 약목하고 왜관 근동에서는..."
외할머니 모습엔 생기가 돌고 나는 지루하게 또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외할머니 방에서 물러 나오면, 외숙모가 계신 부엌으로 들어간다.
"외숙모 물 한 바가지 주이소~"
얼른 물 한바가지 떠주시는 외숙모 눈빛이 초조해 보이신다.
혹 내가 외할머니 말만 듣고 집으로 돌아가서 안 좋은 소문이라도 퍼트릴까 노심초사하는 그 마음을 왜 모를까...
"외할매가 연세 드시면서 점점 엉뚱한 말씀을 하시네요..."
"그래 말이라...내가 어무이 땜에 똑 죽겠다...저래 엉뚱한 말씀을 오는 사람마다 하시니..."
외숙모 또한 그 동안 가슴에 쌓인 답답한 마음들을 털어놓으신다.
"연세가 드셔서 그러려니...외숙모가 참으이소..."
"그래...니 그 말만 들어도 내 속이 다 편해지네..."
초조해 보이던 외숙모 얼굴도 환히 펴지신다.

두 분의 섭섭함과 답답함이 풀리고나면 비록 집에 비해 찬도 부족하고 잠자리도 불편했지만, 두 분의 각기 다른 빛깔의 따스한 정에 파묻힌 채 나만의 편안한 시골추억 쌓기가 시작되었다. 시골에서 사귄 친구들 만나러 밤마실도 다니고, 언덕 너머 외할아버지 산소에도 다녀오고, 심심하면 외조카와 질녀와 놀다가 책도 읽고...

며칠간 편한 외가 방문을 끝내고 돌아오는 날에는 외할머니와 큰외숙모는 마을 앞까지 따라나오셔서 내가 탄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 모습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나는 두 분이 오래도록 사이좋은 고부로 잘 지내시기를 마음 깊이 소망했었다.

그 외할머니는 임종하시던 날, 당시 군복무 중이던 내 새벽 꿈에 나타나셔서 먼 길 떠나심을 알려주시고 짠밥 한 상 다 드시더니 하늘로 오르셨고, 외숙모는 풍족한 노후는 아니더라도 사업하는 외손자와 간호사인 외손녀의 돌봄을 받으며 남은 여생을 잘 보내고 계신다.

방학철만 되면 나는 외할머니와 외숙모가 반겨 맞아주던, 이제는 갈 수 없는 그 외가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