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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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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일지 4 남편


BY 바다 2003-07-31


 

그렇게 딸을 보내고도 마음에 동요가 없어 뵌다.  내가 마음
속으로  악마라 부르는 그를 사람들은 소리꾼이라 부른다.

 

술에 찌든 검으퉤퉤한 얼굴에 생기가 돌아 오면 틀림없이
마을에 초상이 나있다. 그는 오색 찬란한 상여의 맨 앞자락에서
쇠방울을 흔들며 "이제가면 언제 오나?"  어어야, 어어야{후렴}
"북망 산천 멀다는데" 어어야,어어야 "서러워서 못간다네" 어어야,
어어야. 신드린 듯 흔들어 대는 쇠방울 소리에 맞춰 구성지게
뽑는 가락은 망자의 영혼과 남은 자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 했다.

 

모내기 철이되면 잠자는 부주갱이도 일어나 일한다는 옛말처럼
모두 바빠 허덕일때도 그는 예외였다. 게으름을 고칠 요량으로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우리가 모는 낼
텡게 자네는 논둑에 앉아 노래를 부르게."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한숨은 쉬-어서 무엇하나.....,
아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신명나게 노래를 뿜어 내는 그에게 못줄 만 이라도 잡아 달라
제안하면 그는 금방 설사 환자가 되어 있거나, 술이 취해 논두렁
에 쓰러지는 연출을 해 내곤 한다.
 
술에 취하면 주사가 심한 남편이, 박노인은 가끔 취했음 바라는
날이 더러 있다. 주사가 끝난 남편이 골아 덜어 진 시각 서울서
내려온 딸아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동구밖 이긴 하지만.

 

딸은 밤새 내린 이슬 같았다. 밤새 끌어 안고 부벼 봐도 아침되면
햇살에 녹듯 스르르 곁을 떠나 갔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박노인의 마음에 서리가 내렸지. 밤새 주정하던
그가 "술 끓는 약 가져와" 한다.  얼떨결에 잘못 얘기한거겠지 싶어
되물으려다 박노인은 ' 손 대고 코 풀 수 있는 기회야 이 바보야.
취중 그 약을 먹으면 죽을 수 도 있다는데 히 히 히' 자신 안에 들어
있는 악마의 소리에 귀길울였다. 악마는 현명했다.

 

"어어야,어어야 북망산천 멀다는데." 그 구성진 가락소리를 들을 수
없다며 사람들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