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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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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서리 의 추억


BY 미금호 2003-07-31

그러니까 3년전의 일이다.

지금의 월드컵 공원, 상암동 구석말에 살때의 일이다.

그 곳에서 십수년을 이웃하며 아랫집  윗집 , 한 골목에서 우리친구  네 집은

아주 친하게 지냈었다.

그 중 재희네는  더욱 가깝게 친척보다 끈끈한 정으로 살아왓다.

그리고 재희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재희네 할아버지는 연세가 팔순이 다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정정하셨다.

따라서 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의 가족만을 유별나게 챙기셨다.

예를 들어 손주들이 동네아이들과  심하게 노는 것을  멀리서 보면

싸우는줄알고 단숨에 달려오셔서 다른집 아이들을 다짜고짜로 호령하고 때리시는 것이다.

아이들은  잘 놀다가  괜히 맞아서 울고  그집 손주들만 놀지도 못하기가 일쑤였다.

그리고는 당신 용돈으로  사탕을 사오셔서  손주들에게 주시며 하는 말씀이

"다른  애들 주지말고  너만 먹어~~~"하시며 옆에있는 아이를 밀어내시는

고약한 양반이셨다.

손주에게만 그러시는게 아니라 며느리인 재희엄마에게도  각별한 챙김은 계속되었다.

어느날  그날도 재희네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때 였다.

할아버지께서 외출했다가 돌아오시며  붕어빵을 두어마리 사오셨다.

며느리에게 주시며 또 "이거 다른 사람 주지말고  너만  먹어~~"

옆에 있는 나를 경계하시며 몇번이나  당부하시며  다 먹을때까지 보초를 서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  저 붕어빵 먹을줄 몰라요.걱정하시지 마세요...."해도 영 못믿으시는 것이다.

그런 그해 봄

부지런한 재희 엄마는 밭두렁에 호박을 심었다.

여름이 되자 호박넝쿨은 무성하더니 호박이 주렁주렁 달리는 것이다.

후덕한 재희엄마는 호박을 따서 이웃들에게 먹어보라며 다 나누어주는 것이다.

먼 발치에서 이것을 본 할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호박을 세어 놓으시는 것이다.

심지어 누가 따 갈까봐 호박잎으로 감쪽같이 감춰놓으시는 것이다.

그런 어느날 할아버지께서   딸네집으로 출타하셨고

며느리 우리친구 재희엄마도 어디가고 없는 날이었다.

뒷집에 사는 동수엄마와 골목 끝의 슬라브집의 세순이 엄마가 오더니

기회를 놓칠세라 제희네 할아버지가 꼭꼭 감춰둔 호박을  서리하기로 모의했고

우리 아줌마들은 행동으로 옮겼다.

그렇게 탐스런 애호박을 세개씩이나 땄다.

다음날 새벽 할아버지께서 호박넝쿨을 헤치며 확인 작업에 들어갔고

목청을 돋우시며 재희엄마를 부르시더니"얘야 호박세게가 없어졌다.누가 따갔는지  못 봤냐??? 잡히기만 해 보ㅑ  가만 안둘티어....흠흠.."

재희엄마도 우리집에 와서는 시아버님이 그러시더라면서 몹씨 흥분해서

우리아닌 다른 사람들을 용의자로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가 했다고 말할수가 있겠는가??!!

사실 우리가 그 호박이 탐이나서 그랬겠는가.

재희네 할아버지가 하도 그래서  솔직히 미워서 장난삼아 한 짓이었다.

그리고 이틀후 비가 주룩주룩 오길래 우리집에서 국수를 삶았고

그 호박을 볶아서 국수 꾸미로 올려놓았더니  파란 호박이 얼마나 예쁘고 맛있던지 ....

물론 재희네 할아버지께서 워낙 국수를 좋아하시니까

큰 대접에 가득말아서 갖다 드리니 얼마나 잘 잡수시는지...

당신이 감춰둔 호박으로  만든  것도 모르고 맛있게 드시면서  

" 에고 잘 먹었네 그랴, 옛날 시골 잔치국수 맛이여...애기엄마 국수장사해보ㅑ

호박이 아주 맛나 허허허......"

주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일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그 뒤로 항아버지께서는 약간의 경계의 끈을 늦추시긴 했지만 여전하셨다.

지금은 사라진 구석말에서 살던 정든 이웃들도  다 헤어져서  멀리 살다보니

그 고약하고 괴팍스럽던 재희네  할아버지도 그리워진다.

따라서 그 호박 따간 도둑이 우리였다는 것도 말씀드리고싶다.

우리친구 재희엄마에게도  이제서야 말하고 싶다.                                                             그 국수 위의 꾸미가 바로 그대의 호박이었다는  사실을......